【격려상】나는 조선어문 교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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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김경희

나도 한송이 꽃이였다                                         
                                         
2022년 Caraz(카라즈)컵 세계조선족글짓기대회 시상식에서 격려상을 수상한 나의 글 "나는 조선어문교원이다"의 제일 마지막에 나는 이렇게 썼다.

장미꽃의 아름다움은 꽃에 있다지만 꽃을 받쳐주는 든든한 줄기와 꽃을 지켜주는 든든한 가시가 없다면 어찌 꽃의 아름다움을 운운할 수가 있겠는가! 꽃이 우리 민족의 얼로서의 우리 글과 우리 말이라면 나는 달가이 꽃을 떠이는 줄기가 되고 꽃을 지키는 가시가 되리!

꽃을 떠이는 줄기가 있고 꽃을 지켜주는 가시가 있을 때 나도 한송이 아름다운 꽃이였다.

이건 이번 대회의 전반과정을 지켜보며 얻은 하나의 감탄이다.

못난 나의 글이 22번째 글로 조글로에 실려서부터 세계 방방곡곡에 계시는, 우리 민족의 글과 언어를 관심하고 사랑하는 생면부지의 사람들로부터 아낌없는 찬사와 사랑을 받았다.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힘과 용기를 부어넣어주는 댓글들을 보면서 나도 한송이 아름다운 꽃이였구나 하는 감탄에 저도 몰래 감격의 마음에 젖어들게 되였다. 그리도 많은 사람들이 달가이 꽃을 떠받드는 줄기와 꽃을 지키는 가시로 되여서 우리 민족의 얼을 살려가는 일에, 우리 민족의 얼을 이어가는 일에 솔선수범하고 있구나! 는 감탄에 저도 몰래 고개 숙여지였고 존경의 마음이 앞섰다. 더우기 일개 편벽한 산재지역에 있으면서 외계와의 련계가 거의 공백이다 싶이 한 나의 협소한 공간의 글에까지 그렇듯 많은 사람들이 관심과 사랑을 푹푹 떠주는 그 도량 넓은 민족애에 감동되였다.

나도 한송이 꽃으로 나섰기에 다른 꽃들로 나선 사람들의 작품도 열심히 살펴보았다. 그중에서도 대상 수상자 김광림교수의 "일본에서 쓰는 아리랑의 노래"를 시청하며 그 방대한 스케일과 거창한 소재와 이방인으로 되여 민족의 얼을 잃지 않고 타국에서 우리 민족문화를 계승발전하기 위해 한걸음 한걸음씩 전진을 확보하며 힘들게 걸어온 이야기들을 보며 이런 글이야말로 타국에서 아리랑 노래를 부르며 걸어온 우리 민족의 진정한 투쟁사가 아니겠는가고 반문하며 나의 지극히 협애하고 보잘것 없는 글에 대해, 너무나도 한일이 적은 나에 대해 깊이 반성해보는 시간이 되였다.

김광림교수의 글을 읽으면서 비록 걸어온 발자국들에 맺혀진 가슴 저린 이야기들은 크게 읽을 수 없었지만 그들이 타국에서 한걸음 한걸음 우리 민족문화의 발전을 위하여 걸어온 발자취들을 읽노라면 이미 읽었던 조정래의 "새아리랑"이 떠올려지며 그 발전사에 깃든 아픔, 설음, 탄식, 비통들도 얼마든지 글줄속에 슴배여들어가 내 마음에 줄기찬 파도가 출렁대게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다음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꽃들이 전반 사회무대의 한복판에 자리하고 빛을 발하게 해준, 그런 영광의 무대를 마련해준 주최측과 이 대회에 후원을 아끼지 않은 분들께 한송이 꽃으로서 고마움의 심심한 인사를 올리는 바이다. 이번 활동 전반과정에서의 그들의 로고는 더 말할것도 없고 마지막 마무리 일에서까지 우리 꽃들에게 최대의 관심과 사랑을 쏟아부으며 달가이 꽃의 줄기와 가시로 나서 용약 활약한 우리 민족의 든든한 지킴이들에 다함없는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한떨기 꽃으로 나서서 이 대회를 울긋불긋 꽃세상으로 물들인 전체 응모자 여러분께도 한떨기 꽃으로 된 자부심으로 앞으로도 우리 민족의 글과 말, 문화를 이어가는 길에서 단결하여 있는 힘 다 할것을 호소하고 맹세 다진다.

끝으로 전 세계에 메아리로 울리는 아리랑 노래와 함께 우리 진달래 민족이 우리 민족 글과 말, 문화를 대대로 이어온 고난의 력사를 가슴 깊이 새기고 더욱 더 우렁차게 아리랑 노래를 부르며 민족의 꽃을 더 아름답게 더 찬연하게 빛뿌리게 하기 위하여 우리 모두 우리 민족문화의 든든한 지킴이로 꿋꿋이 나설 것을 다지며 우리 민족문화가 나날이 번영창성할 것을 두손 모아 삼가 빈다. 

【응모글 제22편】나는 조선어문 교원이다

글: 김경희 랑독:윤련순 음악편집:변소화

1987년도 흑룡강성오상조선족사범학교 제1기 졸업생으로 고향마을에 분배받은 나는 소학교 5학년 졸업반 조선어문을 담당하게 되였다. 

그때 나의 나이 19살, 애들과의 나이차가 많아서 7살이였고 시골에 있다가 늦게 학교붙은 애들과는 3~4살차이밖에 안되였다. 정말 애가 애들을 가르친다는 농촌 아줌마들의 말과 똑 같았다.

머리 큰 남자애들은 성냥갑안에 시퍼런 버들벌레를 넣어서는 나를 보고 열어보라고 해서 나를 놀래우기도 했고 뱀껍질을 휘저어서 나를 질색시키기도 했다. 그때마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놀라는 애된 처녀선생님이 그렇게 걔들한테는 재미나는 놀이풀이 대상이였다.

심지어 수업시간에 내가 과문을 읽어줄 때도 늘 상스럽지 못한 소리로 큰소리를 내어 왕왕 읽기까지 했다. 나는 처음에 그런 상황이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아 애당초 조선어문교원이 아니라 눈물교원이라 불리게 되었다.

눈물로 머리 체적만 크고 배운 게 없이 상스런 아이들을 가르치다가는 나의 한생을 교육사업에 불사르겠다던 인생목표는 죽도 밥도 아니될 것이였다. 그때 내가 이를 악물고 일어선 것이 곧바로 조선말교육으로 그들을 굴복시키고 순종시키겠다는 결심이었다.

나는 애들의 호기심을 끌만한 력사인물들의 재미나는 이야기들을 교학중에 심심찮게 끌어들이며 애들의 마음을 샀고 반에서 말썽꾸러기애에게 재미나는 영웅이야기를 들려주어 그가 반 애들앞에서 장기표현하는 그 기회를 빌어 그 애를 높이 칭찬해주는 것으로 다른 애들도 해보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따라서 조선어과목에 대한 학습흥취도 불러일으켰다. 조선어문교학을 재밋게 한다는 인상이 서서인지 자기들의 참여의식이 서서인지 이제 머리 체적만 크고 배운 게 없이 상스러웠던 애들은 더는 이상하지 않았고 나를 어린 선생대하듯 하던 학생들도 더는 찾아볼 수 없게 되였다. 오히려 아침문을 열고 출근하려고 보면 언제 가만히 가져다 놓았는지 민들레요, 쑥이요, 미나리요…등 나물들이 반갑게 나를 맞아주곤 하였다.

한번씩 산골마을에 다녀오는 애들은 고향샘물이랑 산열매랑 고사리랑 취랑 더덕이랑 가져와 맛보라면서 주는 것이였다. 눈물 나도록 고마운 애들의 순진한 마음이였다. 애들을 늦게까지 보도해 줄때면 터전 과일이랑 맛있는 먹거리들을 나의 책상에 슬그머니 놓고 돌아서는 귀여운 아이들이 많아졌고  늦은 시간에 퇴근할 때면 남자애들은 마치 호위병이나 된듯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나를 집까지 배웅하는 것이였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걷는 것이 별재미라면서 말이다. “지식은 힘이다”는 도리를 잘 익혀가는 시간들이였다.

교원사업을 시작해서 겨우 석 달이 지났는데 학교에서는 나에게 향(乡) 내 조선족소학교 조선어 공개수업을 내놓으라는 임무를 맡겼다. 나도 하루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선뜻이 그 임무를 맡아 나섰다.

나는 사범학교에서 배운 류남현 선생님의 교수법과 석달내에 “골치덩이”들을 학생으로“귀의”시킬 수 있었던 수단-인물이야기를 결부시켜 교수안을 준비한 후 향 내 조선족학교교원들이 수업경청을 하는 가운데 예전처럼 수업을 편하게 진행했다.

나의 공개수업은 반응이 아주 좋았다. 우선 과목에 대한 나의 수업이 아주 독창적이란 평가를 받았고 수업중에 신화인물이나 역사인물의 이야기를 간간히 간을 치면서 과목에 대한 흥취를 불러일으킨 것, 수업이 끝날 때까지 여러 인물들의 성격을 완벽히 소화해내어 우리 조선족어린이들에게 우리 민족의 역사이야기를 심어준 쾌거라고 절찬을 받았다.

그 후, 나는 수업에서 우리민족의 풍속, 성씨, 예의 등을 틈틈이 끼워넣어 조선족어린이들이 자기민족의 생활풍속과 전통을 알게 하고 자기민족의 역사를 알게 하였다. 이런 나의 독특한 수업은 더욱 큰 성과를 이루어 현, 시, 성 에 이르는 교학경색들에서 자주 선을 보이게 되였다.

한해한해 애들을 초중에 올려보내면서 어딘가 뭔지 모를 그 무엇인가를 채 해주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이였는데 내 아이 1학년 때 “수정체속에서”란 글을 계발 지도해 아동세계 20주년 글짓기콩크르에서 은상을 수여받으면서 그 늘 모자라는 부분이 무엇이였던가를 무릅치며 깨닫게 되였다.

조선어문교원으로서 수업에서 좋은 성과를 이룩해야 할 뿐만아니라 우리 조선족어린이들이 자기 앞 글짓기를 잘하고 자기 앞 표달을 잘하는 것이 조선말학습의 최고목표가 아니겠는가!  1학년 애도 계발과 계시를 통하여 멋진 글을 써내는데 하물며 고년급 아이들이야 더 잘해낼 수 있지 않을 가.

그때부터 퇴직을 앞둔 지금까지 학생들에 대한 글짓기지도를 견지해오고 있다. 상과시간이든 과외시간이든 기회만 되면 애들에게 우리 말 글짓기공부를 가르쳐 주었다. 휴식일에도 40평짜리 나의 작은 집에 글짓기에 흥취가 있는 애들을 불러들여서 북실대며 일기쓰기로부터 시작하여 이야기글, 독서감상문, 동시, 동요 등 애들에게 맞는 문체의 글짓기지도에 정력을 쏟아넣었다. 그리하여 쩍하면 흑룡강성 소학생간행물인 “꽃동산”과 소년보에 내가 지도한 애들의 글들이 실렸고 최미영, 리빈, 한영, 김화복, 안영, 김윤천, 주현미 등 애들은 홈타민컵, 새별컵, 희망컵, 소년아동 클짓기콩클, 꽃동산 글짓기콩클들에서 륙속 은상, 동상의 우수한 영예들을 획득하는 호황기를 이루었다. 현 진수부에서도 현 조선어문작문과 공개수업을 조직하여 나의 작문과지도를 전현 선생님들께 선 보였다. 물은 트는데로 흐른다는 속담을 잘 익혀가는 과정이였다.

또 한가지는 우리 애 2학년 때 전시 조선족 랑송, 랑독, 이야기, 악기, 무용시합이 있었는데 우리 애한테 “콩쥐, 팥쥐”라는 제목의 이야기를  훈련시켰다. 후엄마와 콩쥐의 역을 어찌도 생동히 잘 표현하였던지 총점 96점으로 2등점수 92점을 시원하게 뒤에 따돌리고 모든 항목 통털어 특등상을 수여받았다. 나도 당연히 특등지도상을 수여받았다. 그때부터 학교령도에서는 2년에 한번씩 있는 시 랑독, 랑송, 이야기대회때마다 나에게 큰 희망을 걸곤 하였다. 나도 학교령도의 기대에 어긋남이 없이 평상시상과부터 줄곧 노력에 노력을 경주하여 번마다 특등상을 배출해 냈고 최우수지도교원의 영예를 따내곤 하였다. 진심은 통하게 되여있다는 도리를 잘 체득해가는 길이였다.

황지혜네 반 6학년 조선어문을 맡을 때의 일이다. 그해 부주의로 쇄골골절상을 입고 수술한 뒤끝인지라 몸의 회복이 제대로 못된 상황에서 힘들게 졸업반 조선어문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전국조선족학생 작문경색-”만방컵” 작문경색통지가 하달되였다.

“선생님 신체정황 잘 아는데 참으로 딱한 사정인 줄 잘 아는데 어쩌겠습니까? 경색엔 참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선생님께서 힘드신대로 애들 글짓기를 지도해 주세요. 글짓기지도는 애들을 집에 불러다 집에서 해도 됩니다.” 

이렇게까지 나오는 학교령도앞에서 나는 더 할말을 찾지 못하고 령도들의 뜻에 따라 애들 글짓기지도를 떠메기로 약속하였다. 평상시 교학에서 닦은 내공과 반달가량의 짧은 시간의 피타는 노력을 거쳐 끝내 황지혜학생은 “만방컵” 특등상을 획득하였고 나도 따라서 특등지도상을 수여받게 되였다. 노력과 성공의 정비례관계를 잘 터득해가는 길이였다.

이때쯤하여 누군가 나를 깨우쳐주는 사람이 있었다.

“애들 글을 그렇게 잘 지도하고 애들 랑독도 그렇게 잘 지도하는데 왜 자기 글은 못 발표하고 자기 랑독은 과시 안합니까? 자기 꿈도 꾸고 이루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잘 생각해 보니 참도 의리맞는 말이였다. 조선어문교원으로서 조선어문령역에서 응당 애들의 솔선모범이 되여야  하지 않을 가. 그때부터 애들 글지도, 랑독지도와 함께 나의 글도 쓰기 시작했고 나의 랑독제고에도 본질적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한국  KBS 보고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 방송에 나의 글 두편과 애들 글 네편이 련속으로 우수상에 당선되여 방송되였고 중국조선어방송에도 7편의 나의 글이 방송되면서 나도 해낼 수 있다는 신심을 더욱 가지게 되였다. 그뒤로 꾸준한 학습과 파고드는 정신으로 노력을 경주한 결과 민족문학을 비롯하여 연변문학, 장백산, 송화강, 도라지 등 잡지들과 여러 신문들에 륙속 나의 글들이 실리고 애들 글도 흑룡강신문, 길림신문에 자주 게재되였다. 한쪽으로는 “아침을 열다”란 나의 첫 시집도 한국에서 출판되여 세상에 고고성을 터뜨리게 되였다. 씨앗은 뿌려야 했고 열매는 잘 가꾸어야 성공의 희열을 맛볼 수 있었다.

어제도 랑독준비로 부지런히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애들의 동시조 14수가 소년아동에 발표되고 두만강 청소년시화전에서 우리 애들의 동시가 은상, 동상의 영예를 받아안았다는 좋은 소식이 전달되였다. 마음에 댕겨서 하는 일은 언제나 속도가 났고 효률이 좋았다.

그렇다. 나는 조선어문교원이다.

조선어문교원으로서 매 과당 조선어문교수를 훌륭히 완성하고 우리 글로 된 글짓기를 훌륭히 지도하고 우리 말 랑독, 랑송, 이야기를 훌륭히 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나의 본직이 아니겠는가! 또 조선어문교원으로서 자기부터 학생들의 솔선모범되여 우리 말과 우리 글을 훌륭히 익혀가고 전파해가고 공유해가는 것이 나의 천직이 아니겠는가! 지나온 인생에도 조선어문교원으로서 그렇게 살아왔거니와 앞으로의 인생에도 조선어문교원의 키를 단단히 부여잡고 우리 민족의 말과 글을 이어가는데 한몸을 불태워 갈 것이다. 

장미꽃의 아름다움은 꽃에 있다지만 꽃을 받쳐주는 든든한 줄기와 꽃을 지켜주는 든든한 가시가 없다면 어찌 꽃의 아름다움을 운운할 수가 있겠는가! 꽃이 우리 민족의 얼로서의 우리 글과 우리 말이라면 나는 달가이 꽃을 떠이는 줄기가 되고 꽃을 지키는 가시가 되리!


심사평

응모글 제22편 심사평「나는 조선어문 교원이다」 
심사위원 서옥란 연변대학교 특별초빙교수, 신문방송학과 교수, 박사지도교수


산재지역에서 우리 말과 글을 꽃피우다 

수기가 정서적 고양과 큰 울림의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은 진실성과 동시에 문학적 속성을 일부 띠고 있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경험을 해석하는 글쓴이의 감수성과 그것을 이야기로 형상화할 수 있는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저자는 30여 년의 교직생활 경험을 이야기에 담아 진정성 있게 담아내고 있으며 조선어문 교사로서의 자신의 소박하면서도 굳건한 신념이 잘 드러나 있다. 꾸준한 노력과 변함없는 리상을 가지고 민족의 교육사업에 무한히 헌신한 일이 얼마나 보람있고 빛나는 일이였는지 잘 엮어내고 있다.

19살 꽃나이에 시골 조선어문 교원으로서 여러가지 역경에 부딪쳤을 때 저자에게 힘을 준 것은 바로 변함없는 신념이였다. “내가 이를 악물고 일어선 것이 곧바로 조선말 교육으로 그들을 굴복시키고 순종시키겠다는 결심이였다.” 이와 함께 애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여러가지 방법을 고안해낸다. “단지 조선어문의 교사만이 아닌 력사, 생활풍속과 전통 등 민속문화까지 포함한 다양한 이야기를 넣었더니 아이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게 된 것이다.” 저자의 교수방법에 대한 자신만의 사유와 실천을 보여준다. 

저자는 학생들의 글짓기 수준제고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일기부터 동시, 동요까지 지도하는 동시에 이를 통해 아이들의 심리적 변화를 파악해 고민을 해결해 주고 그들과 심리적 소통까지 진행하게 된다. 그리고 랑송, 랑독대회 등 실천적 활동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여러가지 상을 수여받고 애들의 자신감을 크게 불러일으켰다. 

저자는 시대적 특색이 있는 다양한 교수방법을 개척함으로써 조선어문 교사로서의 역할 뿐만 아니라 민족문화를 전수하고 이어가는 실천가로 활약한 것이다.

사랑과 열정이 없이 어떻게 교육이 이루어지겠는가. 

저자는 우리 말과 글을 가르치는 일은 자신의 “천직”이라고 한다. “꽃이 우리 민족의 얼로서의 우리 글과 우리 말이라면 나는 달가이꽃을 떠이는 줄기가 되고 꽃을 지키는 가시가 되리! ”

저자는 꽃과 줄기와의 관계라는 예술적 표현을 통해 남은 평생을 계속하여 자신의 신념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이 땅의 교육현장에서 몸 담고 있는 평범한 교원의 평범하지 않는 삶을 통해 민족의 얼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수많은 조선어문 교사의 의지와 집념을 낱말 마다에서 쏟아내고 있다. 

이 글은 교육의 현장성을 중심으로 과감한 실천의지와 보람된 성과들을 진술하는데 의욕을 보이면서 많은 분량을 할애했다. 하지만 민족학교의교사, 특히 조선어문 교사로서 인재양성에서 여러가지 오류와 시행착오, 아픔과 좌절을 더 많이 겪었을건데 그런 부분을 조금만 더 다루고 어떻게 극복했는지까지 독자들에게 보여주었다면 체험이 균형을 이루고 감동을 더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심사위원 소개


황유복 프로필


•1966년, 중앙민족학원 력사학부 민족사 전공졸업.
•1966년 7월부터 중앙민족학원에서 조교로 봉직.
•1987년 9월~1988년 12월, 미국 하버드대학 교환교수.
•1984년부터, 미국, 일본, 캐내다, 소련, 몽골, 한국, 오스트레일리아 등 20여 개 대 학에서의 강의 경력.
•1972년, 중앙민족대학 조선어문학과 창설
•1993년, 중앙민족대학 한국문화연구소 창설
중앙민족대학 민족학과사회학학원 박사생지도교수 •(2013년 은퇴)
•1989년 3월-2013년6월,(北京市民办教育法人)북경조선어학교 창설(1993 후속으로 심양, 단동, 길림, 장춘, 하얼빈, 목단강, 후허호트, 석가장, 위해, 해구 등 10개 도시에 분교 설립. 무료로 한국어교육실시.
•현재, 중앙민족대학 한국문화연구소 소장. 일본 아시아경제문화연구소 최고학술고문, 중국조선민족사학회 명예회장, 중국조선사연구회 명예회장, 연변조선족자치주 사회경제발전고문, “China Daily(中国日报)” 동북아국제관계평론가(特约专家),  중국텔레비전예술가협회 중일한PD포럼자문위원,  《중국민족》사 고문 등.


김학송 프로필


•1952년 길림성 도문시 출생.
•장춘 야금지질학교 지질학과 거쳐, 연변대학 조선어문학부 졸업.

•선후로 도문시 문화국창작실 주임, 연변문학
월간사 주임편집, 연변가무단 문학창작원 등을 지냄.
•국가1급작가.
•현재 연변 시인협회 부회장, 연변 시랑송협회 고문.
•1980년 문단에 데뷔.
•해내외에서 시, 가사, 동시, 수필 등 여러 쟝르의 문학저서 30여권 상재.
•전국소수민족문학창작 “준마상”, 단군문학상, 해외동포문학상 등 수상 경력 다수.


이동렬 프로필


•1988 연변대학교 통신학부 조선어문전업 졸업 
•1983년~1992년 9월 길림성 서란시 조선족중학교(고등학부) 고급교사
 •1992년9월~2006년 길림성 용정시 교육TV 총편집
•2006년 1월~ 2012년 5월 한국 동북아신문 편집국장
•2012년 5월~ 현재  한국 동북아신문 사장/대표 
•2018년 10월~ 현재 중국신문(中国新闻 한글판) 차이나워크 잡지 편집주간 
•현재 <도서출판 바닷바람> 발행인, 한국 <동포문학> 발행인, 재한조선족작가협회장(연변작가협회 재한조선족문학창작위원회 주임). 재한동포문인협회 초대회장/현대표. 중국작가협회 회원, 사)한국문인협회 남북위원회 위원. 
•장편소설집 : 《고요한 도시》, 《낙화유수》 출간. 
•중단편소설집 : 《눈꽃서정》, 《토양대》 출간.
•수상 : 연변조선족자치주 진달래문예상, 연변작가협회 문학상, 천지문학상, 도라지문학상, 해란강문학상, 흑룡강신문 (장편)신춘문예상, 재외동포문학상 등 10여 차.
외, 한중문화교류대전, 한중일문학세미나 등 조직하고 한중문화교류대상, 동포문학상, 서울국제작가상 등 시상. 


서옥란 프로필


•1997년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연변대학교 특별초빙교수, 신문방송학과 교수, 박사지도교수.
•주요 연구영역: 미디어와 사회, 대중문화, 국제커뮤니케이션
•선후하여 서울대학교 언론정보연구소 중국국가교육부 파견 연구교수, City University of Hong Kong, Center for Communication Research 중국대륙우수청년방문학자, 한국고등교육재단 IESF방문학자 등을 지냈다. 중국 국가급 성급 등 다수 프로젝트를 완성했고 “미디어와 권력의 게임:박근혜탄핵안보도로부터 본 한국미디어생태환경의 현황”, “한국미디어의 싸드 보도 프레임연구”등 30여편의 논문을 국내외 학술지 발표했으며, 《매체와 대중문화》, 《중국조선족 대중전파와 문화발전》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제1회 연변문학 윤동주문학상 신인상(평론부분)수상, 《신문기자》잡지“올해의 10대 우수논문상”등을 수상. 


전은주 프로필


•도문 량수 출생, 2005년 연변대학 조문학부 입학, 
•2012년 동대학원 문학석사학휘 취득, 2019년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 박사학위 취득. 2020년부터 연세대학교 글쓰기 강사로 재직 중.
•2008년 한국 계간 『창작21』 로 등단하여 다수의 시와 칼럼, 문학평론을 발표. 2012년 『시향만리』 신인상, 2020년 『동포문학』 시부문 최우수상, 2021년 혜산박두진 문학상 제1회 『아시아시선상 수상』.
•연변작가협회 평론분과 회원, 한국문인협회 시분과 회원. 2019년부터 재한조선족작가협회 부회장, 재한동포문학연구회 부회장으로 활동. 2022년부터 재한동포시치료연구회 대표로 시치료 프로그램을 운영.
•논문으로 「재한조선족 디아스포라들의 ‘집 찾기’」 (2017),「재한조선족 디아스포라 정체성의 위기와 자아성찰」 (2017),「한중수교 이후 재한조선족 디아스포라 시문학에 나타난 정체성 연구」(2018),「조선족의 ‘역사적 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시론」(2019),「2000년대 이후 재한조선족 소설 연구 (2020),「중국 망명객 신규식의 디아스포라 시문학 연구」(2021),「재한조선족 문학의 ‘대림동’ 재현양상」(2021),「재한조선족 시문학의 형성과 인식의 변모연구」(2022) 등이 있다.


랑독과 음악편집 담당 소개


윤련순 프로필


•원 연변TV방송국주임아나운서, 방송지도, 연변작가협회회원
•전국방송사회작품평의에서 <매주경제> 국가 1등상(2008,12)
•제6기 전국조선말방송우수작품평의 1등상 (2001년,10) 등 국가와 성 주 우수작품 평의에서 수십차 수상
•《TV방송에서 아나운서의 언어와 MC언어의 특징 (중국조선어문 2016.6), 《 아나운서의 시각에서 본 TV뉴스문의 특성 및 리해 》(중국조선어문2017.1),《 잔디의 고집》(연변문학 2016.9),《소통의 장을 열어가는 열쇠》(청년생활2014.12)등 론문,수필 20여편 발표


장련 프로필


•2005. 9-2007.3 연변주라지오방송국 아나운서《가요데이트》진행
•2007.4-2019.8 훈춘라지오TV방송국 아나운서《훈춘뉴스》진행
•2020.3-   북경정음우리말학교 한국어강사


변소화 프로필


•주식회사 카와 STUDIO AKIRA 대표
•동북사범대학 음악학과 본과졸업
•2009년 주식회사 카와 설립
•일본에서 사진작가로 활약
•재일조선족운동회 회가 <함께해요 미래를> 작곡

기업 협찬 배너

2022년 세계 조선족 글짓기 대회 
후원과 협찬 리스트


후원 단체 리스트

1. 사단법인 전일본중국조선족련합회
2. 사단법인 일본조선족경영자협회

협찬 기업 리스트

1. 주식회사 A-YO상사(Caraz): 전심혁사장
2. 전일화부동산협회: 金山張虎회장
3. 글로벌일통 주식회사: 권호군사장
4. 주식회사 에무에이: 마홍철사장
5. 주식회사 아시안익스프레스: 리룡식사장
6. 주식회사 G&T: 박춘화사장 
7. 주식회사 플램핫: 리승희사장
8. 쉼터물산: 김정남사장
9. 주식회사 베스트엔터프라이즈: 리성호사장
10. 삼구물산 주식회사: 리성사장
11. 시루바포또 유한회사: 서성일사장
12. 주식회사 JCBC: 엄문철사장   
13. 마즈도향양양(松戸香羊羊): 권룡산사장  
14. 주식회사 타겐고시스템연구소: 김만철사장
15. 주식회사 위츠테크놀로지: 전호남사장
16. 주식회사 HANAWA: 리성룡사장
17. 주식회사 아후로시: 上田一雄사장
18. 동화(東和)솔루션엔지니어링구주식회사: 최장록사장
19. 주식회사 PLZ: 박금화사장
20. 스튜디오 아키라: 변소화사장 
21. 카바야한방연구소: 로홍매소장
22. 주식회사 ZORUHARA: 이태권사장

개인 협찬 리스트

1.최우림:중국농업대학 박사 전일본중국조선족연합회 부회장
2.장경호:신일본미술협회 심사위원 연변대학일본학우회 회장
3.김광림:일본니가다산업대학교 교수 일본도쿄대학 박사
4.리대원:재일장백산골프우호회 회장
5.박춘익:주식회사 BTU사장
6.리 숙:주식회사 미사끼(実咲)사장
7.최운학:일본훈춘동향회 회장
8.구세국:재일조선족배구협회 회장
9.박진우:金子自動車 본부장 南越谷점장
10.김정순:재일조선족심목회

일본조선족문화교류협회 계좌안내:
銀行名:三菱UFJ銀行 日暮里支店(普) 0554611
名義:一般社団法人 日本朝鮮族経済文化交流協会
【ニホンチヨウセンゾクケイザイブンカコウリユウキヨウカイ】

후원과 협찬에 관한 문의는 
일본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 메일주소로 보내주세요.
메일주소:info@jkce.org

후원금과 협찬금은 입금을 확인한 후
【一般社団法人 日本朝鮮族経済文化交流協会】명의로
령수증을 발급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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