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일본에서 쓰는 아리랑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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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김광림                                      
                                         
2022년 Caraz(카라즈)컵 세계조선족 글짓기대회에 제가 대상을 수상하게 되어 너무나 큰 영광입니다. 저에게 이런 큰 영광을 안겨준 대회 주최측, 협찬을 해주신 여러분, 응모글을 심사해주신 5명의 심사위원 선생님께, 낭독해주시고 음악편집해주신 여러 선생님께 저의 진심어린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그리고 125편의 작품으로 이 글짓기대회에 동참하신 모든 응모자 여러분께, 또 이번 글짓기대회 응모글을 읽으시고 응원해주신 수많은 독자 여러분께도 감사의 인사드립니다. 

저는 이번 글짓기대회에 처음에 아주 약소한 금액으로 개인협찬에 참가했습니다. 그런 관계로 응모글이 하나 둘 발표되면서 시간나는대로 작품들을 읽어보았습니다. 응모자분들이 각자의 소중한 인생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걸 보면서 저도 쓰고 싶은 글이 있어서 동참할 의욕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마침 올해에 하는 일이 많아 글 쓸 충분한 시간이 없어서 8월 중순, 제가 근무하는 대학교 여름방학 기간에 여러날 집중해서 글을 썼습니다.

제가 오래전에 일본에서 유학생으로 회사 아르바이트 할때 어느 일본인이 님 웨일즈의 《아리랑의 노래》를 읽어본 적 있는가? 내가 대학생 때 그렇게 감명 받았고, 조선인에 대한 인상이 확 바뀌더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 말 듣고 도서관에 가서 찾아서 읽어봤는데 정말이지 우리가 읽어야 할 책이구나 하고 감탄했습니다. 그 후 한국어판도 읽어보면서 이 책이 저의 애독서가 되었습니다.

이번 세계조선족 글짓기대회에 이 책을 읽고 난 감동을 살려 제가 30여년간 일본을 중심으로 해외에서 만난 수많은 조선족의 이야기를 아리랑의 선율에 담아 엮어보려 했습니다. 일본에서 조선족의 초창기 단체활동에 거의 다 참가한 경험, 일본의 조선족 커뮤니티가 근년에 성장해가는 과정에 여러 활동에 동참했던 경험을 기록에 남기고, 국제사회에서 우리 조선족동포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통하여 우리들의 가능성과 희망을 찾아보고 그 것을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이런 동기로 8월말에 응모글 발표했지만 정작 시작하고 보니 우려감과 뒤로 물러나고 싶은 마음이 같이 생겨났습니다. 통상적인 글짓기대회와 달리 이 글짓기대회는 심사위원 평가로만 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구독자 수와 댓글 수를 40점 가산점으로 정했으니 응모글 내고 조용히 심사위원 평가만 기다리는 글짓기대회가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구독해주고, 응원해주고 댓글 달아주어야 가산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글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특별한 글이 아니고 무슨 독자가 구름처럼 모이고 댓글이 산더미처럼 모이겠습니까? 그러니 응모자 스스로 홍보도 잘 해야 한다고 생각됐습니다. 명색이 대학교 교수란 사람이 제 글 돌리면서 읽어봐달라, 평가도 해달라 하는 일이 정말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어느 그룹에 제 스스로 응모글 올리자면 얼굴이 벌개지는 부끄러움이 앞섰습니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이였습니다. 

이런 부끄러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 제가 쓴 글에는 제 자신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많은 조선족분들의 이야기가 같이 담겨있고, 이 글 통해서 우리 조선족은 세계를 무대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소중한 존재들이라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조선족사회에 꼭 전해드리고 싶은 강한 의욕이 앞섰기때문입니다. 제가 먼저 움직이니 저를 이해해주시고 제 글에 동감을 표시하는 분들이 늘어나면서 제 글에 대한 구독자 수, 댓글 수가 늘어났습니다. 8월말에 응모글 발표해서 9월말 평가 기간까지 과연 얼마나 구독 수, 댓글 수가 늘어날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클릭 수 2,000회, 댓글 수 30개 정도까지 가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시고 읽어주시고 평가해주시는 과정에 구독자 수, 댓글 수가 한달이내에 많이 늘어났습니다.

심사평이 발표되면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열어봤습니다. 전은주 심사위원님의 님 웨일즈의 《아라랑의 노래》를 읽는 듯한 감동을 독자에게 주지 못했다는 평가가 정확한 진단인 것 같습니다. 제가 더 진지한 태도로,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글을 썼다면 더 좋은 평가를 받았지 않았을까 후회되기도 했습니다. 

9월말 평가 기간이 끝나고 나서 저의 집안의 80대 큰 형수님이 “이봐요 시동생, 이번에 상 타고 안 타고를 떠나서 시동생의 응모글에 그렇게 따스하고 애정 어린 댓글들이 많이 달리고 그 평균 수준이 아주 높다는 것을 영광으로 삼소. 수많은 분들이 시동생을 얼마나 도와주었소. 정말 행복한 일이요" 라고 80대의 경륜에서 오는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정말이지 이번 응모글을 통해서 너무나도 많은 분들이 저를 도와주고 격려해주었습니다. 제가 받은 대상은 바로 이런 덕분입니다. 제 응모글에 대한 따스하고 애정어린 격려, 평가에 가슴이 뭉클해지고 큰 용기를 얻었습니다.  

11월3일 시상식이 열렸습니다. 

니가타에서 전철, 신칸센 타고 도쿄 외곽의 시상식장에 갔습니다. 그 장소가 바로 일본땅에서 처음으로 개관된 조선족문화회관이었습니다. 중국조선족이 일본에 이주해 살면서 우리의 문화회관을 가지자는 소망이 많은 분들에게 있었습니다. 사재를 털어서 그 소망을 이루어준 일본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 권호군회장님께 아낌없는 찬사를 보냅니다.

이번 세계조선족 글짓기대회는 우리 글을 사랑하고, 우리의 혼을 지키려는 뜻있는 분들의 담대하고 치밀한 기획에 의해 추진됐습니다. 그리고 많은 조선족의 학자, 문화인들이 지지하고 동참하고 일본, 중국, 한국의 조선족 미디어가 협력해주었습니다. 코로나로 어려운 환경속에서 일본의 조선족 경영자들과 일반인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후원했습니다. 

이제는 세계를 무대로 살아가는 우리 조선족의 전례없는 글잔치가 바로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응모자의 남녀노소 구분없이, 국적의 제한없이, 잘나고 못나고를 떠나서 우리 글로 우리의 진지하고 소중한 이야기를 엮어가는 향연이 올해 1년간 조선족사회에서 크게 화제가 됐습니다. 

125편의 우리의 소중한 인생의 이야기, 진솔한 이야기속에 모든 사람들의 인생철학이 녹아들고, 삶의 애환이 여실이 보여졌습니다. 그리고 글속에 세계를 무대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새롭고 아름다운 가치관도 같이 나타났습니다. 125편의 응모글, 그 페이지를 다 펼친다면 장대한 우리의 서사시가 아니겠습니까?! 

이 뜻깊은 역사에 남을 무대에 같이 올라준 125편의 응모글의 주인공 여러분, 영광과 행운, 그리고 건강이 항상 따르시기를 바랍니다. 이 주인공들을 알뜻하게 빛내주신 모든 관계자 여러분께 다시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22년 11월 6일 김광림 올림 

【응모글 제43편】일본에서 쓰는 아리랑의 노래

글: 김광림 랑독:서방홍 음악편집:변소화

심금을 울려주는 《아리랑의 노래》

미국의 저널리스트 에드거 스노(Edgar Snow)가 1936년에 연안을 방문하여 장정을 방금 마친 모택동 등 중국공산당 지도자들을 취재하여 쓴 《중국의 붉은 별》(Red Star Over China)은 중국공산당과 홍군의 진실을 서방세계에 처음으로 알린 역사적인 명작이다. 그런데 에드거 스노의 부인이며 저널리스트인 님 웨일즈(Nym Wales) 가 같은 시기 연안에서 조선인 혁명가 김산 (본명 장지락)을 만나 쓴 책《아리랑의 노래》(Song of Ariran)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책이다.

이 책은 1941년에 미국에서 처음으로 출판되었는데 그리 관심을 받지 못하다가 1970년대에 대학교의 독서교재로 지정되고 재미한국인 사회에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일본에서 1960년대에 대단히 인기있는 책이 되었고 진보적인 청년층이 많이 읽게 되었다. 한국에서 1980년대에 출판되어 인쇄를 몇십번 거듭하면서 진보적인 지식인과 학생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중국에서도 1986년에 이 책이 조선어로 출판되어 많은 조선족들이 읽게 되었다. 아마 이 책처럼 조선인들의 일본의 지배에 대한 치열한 저항과 불굴의 투쟁을 생동하게 그려낸 책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는 저자 님 웨일즈의 조선과 조선민족에 대한 애정이 다분히 담겨있다. 나는 주저없이 이 책을 하나의 빛나는 고전적인 명작으로 평가하고 싶다.

이 책이 태어나게 된 경과는 의외의 만남에서부터이다. 님 웨일즈는 1937년 초여름에 연안의 노신도서관에서 이 도서관의 많지 않은 영문도서와 잡지를 수십권씩 빌려가는 사람이 명단을 발견하여 그가 누군가 물어봤더니 연안군정대학에서 일본경제와 물리, 화학을 가르치고 있는 조선대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호기심이 생겨 그를 찾아보게 되고 그와 22번 인터뷰를 거치면서 이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불행하게도 김산은 님 웨일즈와 인터뷰를 마친 이듬해에 반혁명, 스파이라는 불투명한 죄명으로 연안에서 처형되었다. 아마 이 책이 출간되지 않았다면 장지락이라는 조선혁명가는 역사의 기억속에서 망각되고 말았을 것이다. [珍藏版] "아리랑의 노래"(님 웨일즈 · 김산)

나는 1988년에 일본에 유학왔다. 25살 나이에 일본에 와서 이제 오십대 마감에 들어섰으니, 30여년 넘어되는 세월을 일본에서 보내게 된 것이다. 나 자신의 청춘기, 중년기의 대부분을 일본에서 지내면서 수많은 조선족과 만나고 교류하고, 여러 단체활동을 통하여 의미있는 시간을 같이 보냈다. 그 사이 중국에 자주 다니면서 국내 조선족의 변화하는 모습을 애써 관찰했고, 미국, 영국에 2년간 체류하면서 그곳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조선족의 모습도 목격하게 되었다. 30여년 사이에 만난 수많은 조선족의 다정한 얼굴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스치고, 가지가지의 에피소드가 여울목 물소리처럼 귓가에 아른거린다. 우리가 조선족으로서 살아온 이야기, 청춘과 중년의 시절 국경을 넘나들며서 뜨겁게 살아온 이야기, 이것도 분명히 또 하나의《아리랑의 노래》가 아닐까?! 나는 이런 생각이 들어서 우리의 보람있는 삶을 기록에 남기려는 사명감으로 일본에서 한편의 아리랑의 노래를 써보려 한다. 

초창기의 조선족의 단체활동

나는 1988년 10월에 일본에 유학하여 처음 1년반을 도쿄 외곽에 있는 쓰쿠바대학에서 연구생으로 지냈다. 그 때 쓰쿠바대학에는 여러명의 조선족이 유학하고 있었는데 신기스럽게도 서로 누가 조선족이라는 것을 재빨리 확인하게 되고 같이 어울리면서 사이좋게 지냈다. 해외에 나오게 되면 조선족 사이의 연대감이 강화되어 서로 모르던 사이에도 인츰 친해지는 경향이 있다.

나는 1990년 4월부터 도쿄대학교의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도쿄에 이주했는데 이때부터 정말이지 많은 조선족들과 접촉하게 되었다. 그해 5월에 도쿄에서 연변대학교 교수출신자들과 북경에서 온 조선족 지식인들이 중심이 되어《동방학우회》라는 유학생, 학자모임이 결성되었는데 이 모임이 생기면서 도쿄지역에서 조선족들이 자주 모였다. 

이 모임이 결성될 때 연변대학교 조선언어문학학부의 김호웅선생이 연락이 가능한 도쿄지역의 조선족들에게 편지를 띄웠는데 편지글의 “자! 백의동포들이여! 우리 손잡고 뭉칩시다!! ” 라는 글귀가 참으로 감동스러웠다. 그 때는 유학생, 학자들마다 전화가 있은 것도 아니어서 편지로 안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모든 안내를 손쉽게 보낼 수 있는 지금이 신선같은 시대이다.  

이 모임이 성립된지 얼마 안되는 1990년 7월에 도쿄지역의 조선족 20여명이 사이타마현에 있는 옛 고구려 왕족을 모시는 고려신사를 견학했다. 고려신사는 고구려의 멸망시 일본에 망명한 왕족의 영혼을 모시는 시설이고, 그 지역에 716년에 고려군(高麗郡)이라는 고구려인들을 위한 행정구역이 설치되어 2천명에 가까운 고구려인들이 모여살았다고 한다. 산설고 물선 이국땅에서 망명 고구려인들의 정착지를 찾아 현재도 남아있는 후손들과 고려(高麗), 고려천(高麗川)이라는 지명과 만나게 되어 그날 참가자들이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 이후 일본에서 조선족의 단체활동을 하는 경우 이 고려신사를 자주 찾는다.  

그해 8월에는 오사카에서 개최된 국제고려학회 대형심포지엄에 참가하여 중국에서 참가한 조선족 지식인들과 조선, 한국, 기타 해외에서 참가한 코리아민족의 학자들과 의미있는 교류의 시간을 가졌다. 

《동방학우회》에서 가졌던 또 하나의 보람찬 활동이 1990년 여름에 20여명의 유학생, 학자와 가족들이 한국으로 10여일간의 고국방문을 다녀온 것이다. 고베에서 배를 타고 밤중에 대마도를 지나 이른 아침에 부산항에 도착하던 그 때의 광경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일행중 대부분이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던 것이다. 한국에서는 부산, 포항, 경주, 서울, 판문점을 방문했는데 좋은 인상을 많이 받아 오늘까지 고국에 대한 긍정적인 사고로 남아있다. 


동방학우회 회원 고려신사 견학사진(1990년 7월)  

《동방학우회》는 초기에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다가 골간들이 일본에서 연구를 마치고 중국으로 되돌아가면서 활동이 뜸해졌다. 그 사이 1992년 6월에 일본에 유학, 또는 연구차 방문하던 연변대학교 교수출신자들이 《재일연변대학교학우회》를 새로 설립하였다. 그리고 나서 공부모임, 친목모임, 여행을 많이 조직했는데 《재일연변대학교학우회》는 어느덧 올해로 성립 30주년을 맞이하는 일본에서 제일 오래된 조선족의 단체로 자리잡고 있다.


일본에서 제일 오래된 조선족단체인 연변대학일본학우회 성립대회(1992년 6월)

《동방학우회》,《재일연변대학교학우회》에서 활동하던 조선족중에서 중국과 일본의 학계에서 활약하는 인물이 많이 나왔고, 나는 인구가 그리 많지 않은 조선족에 인재가 정말 많구나 하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됐다.

1995년에 도쿄의 고락쿠료(後楽寮)라는 중국유학생, 학자회관에 들어있던 조선족 여러명이 같이 모이면서 《천지클럽》을 만들었는데 이 모임이 차츰 도쿄지역의 조선족들중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1998년 봄부터《천지클럽》과 《재일연변대학교학우회》의 멤버들이 손잡고 《천지클럽》을 일본의 조선족사회의 중심단체로 키워가기 시작했다. 그 때 《천지클럽》이 내건 슬로건이〈교류, 협력, 공동발전〉이었는데 30대 초반에서 중반 연령의 조선족들이 이 모임의 골간이 되어 일본속에서 명실상부한 조선족단체를 만들려고 많이 노력했다. 그 때도 초기에는 온라인 시대가 아니어서 많은 안내를 편지나 엽서로 보냈는데 그 때의 안내문이나 회의기록문을 지금 다시 읽어봐도 다들 얼마나 진지하게 《천지클럽》을 키우려 했는지 생생한 감동이 아직도 전해진다.

나는 초창기의《동방학우회》와 《재일연변대학교학우회》의 모임에 참가하다가 1998년에《천지클럽》의 확대, 발전기에 같이 참가하면서 이 모임이 조선족사회에서 신선하고 희망적인 요소들을 지니고 있음을 느꼈다. 일본사회에서 누구한테 의지하지 않고 자신들의 힘으로 조선족단체를 키우려는 의지가 명확했고, 조선족들이 모이면 술이나 마시는 기풍을 없애려고 술모임을 거의 가지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모일때마다 참가비 500엔을 거두어 중국의 조선족 청소년들의 장학금으로 쓰기로 했다.《천지클럽》은 1998년부터 수년사이 좋은 활동들을 많이 조직했다.

정기적인 교류회, 취직・성공경험교류회, 무도회, 야유회, 송년회, 운동회 등 모임을 많이 가졌는데 그 때부터 여러해에 걸쳐 도쿄지역의 조선족사회의 중심단체로서의 역할을《천지클럽》(이후《천지협회》로 명칭변경)이 톡톡히 했다. 이 모임의 초창기에 같이 활동한 조선족들은 중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온 20, 30대의 젊은이들이었는데 다들 꿈이 많고 조선족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대단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나서 그 때 같이 활동하던 멤버들을 보면 사업에서 성공한 사람이 많이 나왔다.

나로서 이 모임에서 제일 인상이 깊었던 것은《천지인문》이라는 잡지의 편집을 담당하면서 모두들 무보수로 밤늦게까지 잡지를 만들고 때로는 자기들 돈을 들여가면서 잡지를 발행했던 것이다. 그 때 일본에서 처음으로 조선족의 잡지를 만들어보자는 의욕이 대단했고, 순수하고 좋은 내용의 잡지를 2년정도 유지했던 것이다.

1999년에는 일본에 유학하던 연변대학 교수출신자들이 중심이 되어 《중국조선족연구회》를 설립하여 조선족에 대한 연구활동을 진행하다가  2007년에《조선족연구학회》로 발전하였는데 이 모임에 주로 학자, 대학원생들이 모이면서 일본에서 조선족연구단체로 자리를 잡았고, 규모가 큰 국제학술모임도 여러차려 개최하였다. 우리말 속담에 시작이 절반이라고 처음에 소수의 멤버들이 연구모임으로 시작한 것이 꾸준이 이어져오는 사이 일본에서의 조선족연구의 구심점이 되었다. 

발전을 거듭하는 조선족사회

1980년대부터 중국조선족의 일본진출이 시작됐는데 그로부터 40여년 시간이 흐르면서 일본에 거주하는 조선족의 인구수가 급속하게 늘어났다. 일본의 중국조선족의 인구수에 대하여 아주 정확한 통계는 없고, 수만명 이상이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것은 거의 틀림없을 것 같다. 

일본에 거주하는 조선족은 중국국적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는 사람, 일본에 귀화한 사람, 또는 한국국적을 취득한 사람 등 다국적집단으로 변해가고 있다. 국적이 변해도 일본의 제1세대 조선족들이 중국에서 태여났고, 같은 조선민족으로서의 동질성과 공통의 감정을 지니고 있기에 서로 교류하고 협력하면서 학우회, 동향회 및 각종 기능별 단체를 만들고 일본속에서 조선족공동체를 형성해가는 경향이 근년에 뚜렸하게 나타나고 있다.

 1990년대에는 《동방학우회》《연변대학일본학우회》《천지협회》《조선족연구학회》 등 조선족이 중심이 된 단체가 몇개밖에 없었는데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쉼터미디어》《세계한인무역협회치바지회》《재일조선족축구협회》등 조선족이 중심이 된 단체가 여러개 늘어나고,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재일조선족경영자협회》《연변일중일본학우회》《일본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우리세미나》《재일조선족심목회》등 새로운 단체가 많이 생겼다. 

현재 일본에는 30개가 넘어되는 조선족이 중심이 된 단체가 있다. 대학교학우회, 고중동창회, 각 기능별 단체외에도 동향회, 종친회까지 생겨 일본의 조선족 사회가 학연, 지연, 혈연을 중시하는 경향도 나타내고 있다. 

이상의 조선족의 단체활동에서《쉼터미디어》를 통한 조선족의 활발한 교류, 《조선족연구학회》에 의한 여러차례의 국제심포지엄의 개최,《세계한인무역협회치바지회》의 차세대비지니스스쿨의 개최, 《동경샘물학교》《간사이조선족총회》의 조선족 어린이들에 대한 다언어교육 등은 일본조선족 단체활동의 모범사례로 볼 수 있다. 

일본에 체류하는 조선족이 늘어나고 조선족사회가 형성되면서 대형이벤트가 개최되고, 단체활동의 통합이 이루어지고 있다. 

도쿄와 오사카에서 이미 여러번 개최된 조선족운동회는 일본내의 조선족들이 다수가 참가하는 축제의 마당이 되여가고 있고, 2019년 11월에는 도쿄에서 <세계조선족문화절>이 개최되여 일본, 중국, 한국에서 조선족들이 많이 모이게 되였고, 조선족 예술인들이 다수 출연한 문화공연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러한 흐름속에서 일본의 현재의 여러 조선족단체가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고 보다 큰 차원에서 일본에 거주하는 중국조선족동포들이 친목과 화합, 상부상조를 도모하고 중국, 한국 ,미국 등 세계 각 지역의 조선족 사회와도 소통과 협력을 촉진할 필요성을 느껴 나와 연변대학일본학우회 장경호 회장이 발기인이 되어  2019년 2월 23일에 도쿄에서 <일본내 조선족단체발전을 위한 협의회>를 소집, 개최하였다. 

이 협의회에 일본의 18개 이상의 조선족단체 대표들이 모였는데 일본속에 조선족의 중심단체를 설립하는데 공감을 표시하여 그 자리에서 조선족단체발전추진위원회를 발족했다. 그로부터 5차례의 조선족단체발전추진위원회가 개최됐고 매번 모임마다 긴 시간을 들이면서 일본전국규모의 조선족연합회를 구상하고, 단체의 정관을 만들고, 이사회를 구성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2019년 9월 8일 재일본중국조선족 22개 단체 대표가 도쿄에 모여 제1차 이사회를 개최했고, 이사회에서 전일본중국조선족연합회 회장,부회장, 사무총장 등 임원을 선출했다.

그리고 2019년 11월 3일 도쿄에서 200여명이 모여 전일본중국조선족연합회 성립식을 성대하게 거행했다. 이 성립식에는 중국, 한국에서 조선족 기업가, 문화인, 예술가가 많이 참가했고, 다들 진심으로 축복해주었다.

전일본중국조선족연합회는 일본속의 조선족의 중심단체로서 일본에서 조선족공동체를 형성하고 세계 각지의 조선족 사회와 교류,협력해가는데 있어서 금후 좋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2019년 2월 일본내 조선족단체발전을 위한 협의회 기념사진(김권철 촬영)


미국과 영국에서 만난 조선족

1980년대부터 중국이 개혁개방정책을 실시한 이래, 중국조선족의 제일 뚜렷한 변화가 전통적인 거주지인 동북지역을 떠나 연해지역으로, 해외로 이동하는 현상이 보편화된 것이다. 

이런 가운데서 조선족의 가치관에 엄청난 변화가 생겼고, 현대의 조선족들은 보다 열린 환경에서, 다원문화속에서 삶을 영위하는 것이 숙명처럼 되여가고 있다. 이런 환경의 대변화속에서 우리 조선족들은 가치관과 정체성의 혼돈을 겪게 되고, 지금까지 잘 유지되어왔던 민족공동체에도 위기가 많이 생겼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조선족의 새로운 성공모델을 찾아서 거기서 희망을 찾아보려는 경향이 비교적 짙다. 그 성공모델이란 회사경영으로 사업에 성공했다거나, 연구분야에서 중국이나 국제사회에서 인정을 받았다거나, 음악이나 체육분야에서 명성을 많이 떨쳤다거나 하는 얘기로 많이 귀결된다. 또는 과거의 조선족의 유명인물들의 사적을 발굴하여 현대에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려는 경향도 뚜렸하게 나타나고 있다.

내가 오늘 이 글에서 소개하려는 몇 명의 조선족들은 아직 크게 성공한 사람들은 아니지만, 자신들의 삶을 열심히 옳바르게 살고 있는 사람들로서 우리들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겠는가 하는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된다.

나는 2009년에서 2011년 사이에 일본의 소속대학교의 연구활동으로 미국과 영국에 2년간 체류하면서 현지에서 여러명의 조선족을 만나고, 알게 되었다. 그 가운데서 3명의 조선족을 소개하려 한다. 글의 내용이 보다 진실성을 띄게 하기 위하여 여기서 소개하는 3명의 조선족에 대하여 실명을 들려고 한다. 틀린 점이 있으면 이들과 독자들의 아량을 바라는 바이다.

김만수 박사

나는 2010년 8월부터 미국에서 처음에 1년간 연구활동하던 캘리포니아주의 버클리대학교 (UC Berkeley)를 떠나 하버드대학교에서 연구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그 때문에 미국 동부의 보스턴에서 거처를 찾아야 했다. 그러나 보스턴에는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어 어떻게 새로운 거처를 찾을까 고민하다가 당시 내가 미국생활체험을 연재하고 있는《조글로》에 미국생활에 관한 글을 쓰고 있던 조선족 김만수 박사를 찾게 되었다. 김만수 박사는 그 때 하버드대학교에서 의학관련 포스터닥(박사과정을 마친 후의 연구원과정)을 하고 있었는데, 내가 메일을 보내니 대뜸 전화까지 걸어와서 미국에서 같은 조선족을 알게 된 반가움을 표시하고  내가 보스턴에서 거처를 찾는 문제를 크게 도와주었다. 내가 보스턴에 옮겨갈 때도 기차역까지 마중을 해주고, 하버드대학교에서 의학연구를 하는 조선족연구원들을 모아서 나를 위해 환영회를 열어주었던 것이다.

이런 사적인 교분에서 내가 김만수 박사에게 호감을 가지는 것은 물론이지만, 나는 김만수 박사의 근면한 노력과 과감한 도전정신을 높게 평가하고 싶다. 김만수박사는 연변출신으로, 연변대학교 농학원에서 수의학을 공부하고 일본에 유학하여 기후(岐阜)대학교에서 수의학 박사학위를 받고, 일본의 국립연구소에서 몇 년간 연구원생활을 하다가 미국의 하버드대학교에서 포스터닥이라는 신분으로 4년간 동물의료에 관한 연구를 했다. 일본과 미국에서 연구하는 기간에 김만수박사는 연구성과를 많이 내고, 특허를 두개나 따내게 되었으며 그런 성과를 인정받아 2011년 초봄에 약관 40세의 나이에 중국과학원동물연구소의 연구원, 박사지도교수로 초빙을 받았다.

김만수 박사는 처음부터 최고의 엘리트과정을 밟은 것이 아니고, 근면한 노력과 과감한 도전정신으로 한단계씩 발전한 인물이라 생각된다. 그가 일본에서 미국에 옮겨가는 과정에서 영어공부를 하느라고 집안 구석구석에 영어메모장을 붙혀놓고 있었다고 하며, 하버드대학교에서 4년간 연구하는 기간에 불철주야라는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연구에 몰두했다고 한다. 자수성가라는 말이 김만수박사의 경우에 꼭 들어맞는 것 같다. 연변의 농촌마을 출신으로 부모의 후광을 크게 입은 것도 아니고 노력에 노력을 거듭해가면서 연변대학교에서 일본유학을 하고 다시 하버드대학교에까지 가게 되고 중국 최고의 과학연구기관에서 당당하게 연구원, 박사지도교수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박영애 원장

나는 미국에서 2년간 체류하면서 미국생활을 여러 미디어에 연재하게 되었는데, 그런 과정에서 미국조선족의 대표적인 인터넷사이트인《조선투데이》의 운영자인 박영애 원장를 알게 되었다.

박영애 원장은 중국 길림성의 중의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지방의 여러 병원에서 근무하다가 다시 연변대학교 의학원을 졸업하고 북경의 중의대학교에서 연수를 마치고 나서 1990년부터 미국에 이민으로 건너가서 필라델피아에서 중의원을 개업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박영애 원장은 중의원을 경영하면서 미국에서 더 공부를 하여 중의학 박사학위를 받게까지 되었다. 그녀의 이런 경력을 보면 상당한 학구열과 근면한 노력이 있었음을 쉽게 보아낼 수 있다. 특히 여성으로서 두 자식을 미국에서 키워서 공부시키고 자신은 병원경영으로 성공했다는 자체가 보통일이 아니다. 그러나 내가 박영애 원장을 높이 평가하고 싶은 것은 그의 사업에서의 성공보다 그가 사업에서 성공하고 나서 나눔의 정신을 솔선하여 실천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영애 원장은 미국에서 딸애가 대학교를 다니던 과정에 방학이면 민간인들이 기부한 장학금으로 연수를 많이 다니는 것을 보고 본인도 그런 좋은 사업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자신이 미국에서 병원경영을 하는 과정에 재미한국인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따져보면 결국 자신이 중국에서 조선족학교에 다니면서 조선어와 민족교육을 제대로 받은 덕분이 아닌가 생각하여 길림성 교하시 외곽에 있는 모교인 조선족소학교에 기부를 하여 우수학생과 우수교사를 지원하고 강의용품들을 사도록 하였다. 

몇 년간 모교에 기부를 해오다가 그 모교가 학생이 줄어들어 안타깝게도 페교가 되자 연변적십자회와 상의하여 도문시 농촌의 조선족소학교를 재정적으로 돕는 사업을 진행하였고 연변1중에도 재정지원을 하였다.

그러다가 2007년부터 연변대학교에 장학금을 제공하는 사업을 시작하고 연변대학교에서 조선족민족박물관을 짓게 되자 거기에도 자금지원을 했다. 박영애 원장은 지금까지 길림성의 조선족학교와 연변대학교에 인민페로 수십만원이 넘어되는 기부를 해왔다. 미국에서 중의원을 경영한다고 하지만 수입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자금이 척척 남아도는 상황도 아닌 것 같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녀는 조선족의 민족교육에 대한 장학사업에 대단한 열성과 자긍심을 가지고 그 사업에 많은 시간과 재력을 들이고 있다.

박송림선생

나는 2011년 6월부터 3개월간 영국의 런던대학교에서 연구활동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영국에서 또 한명의 조선족을 만나게 되었다. 1980년대 후반에 나와 연변대학교 외국어학원에서 동료로 있던 박송림 선생을 영국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박송림선생은 연변대학교 외국어학원에서 영어강사로 있다가 1990년대에 영국에 유학하여 영국중부지역에 있는 랑카스터(Lancaster)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그 대학교에서 연구직으로 취직하고 있었다. 그는 영국에 유학한지 10여년이 넘어되고 이미 영국 국적을 취득하고 랑카스터시에 정착하여 살고 있었다. 아들애가 영국중부의 대도시인 만체스터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부부간이 랑카스터에서 주택을 구입하여 비교적 안정된 이민생활을 하고 있었다.

박송림선생의 요청으로 나는 2011년 7월에 3박 4일간 랑카스터에 여행가서 박송림선생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내가 그 분한테 제일 인상이 깊었던 것은 박송림선생이 영국에서 정착하여 살아가면서 정직하게 살려는 의지가 강하다는 점이다. 

그는 여러 번 영국에서는 사회생활에서 정직함이 우선적으로 요구되며 요령을 부리거나 거짓이 이 사회에서는 잘 통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그런 영국의 사회환경에서 살면서 박송림선생은 우직하다고 할만큼 정직한 삶을 추구하는 것 같았고 또 그 때문에 그의 영국에서의 이민생활은 순조로울 것 같았다. 

“정직함이 지혜” 라는 책의 제1장에 토머스 제퍼슨 미국 제3대 대통령의 말이 있다 싶이,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이 결국에는 문명사회에서 살아가는 기본자세일 것이다.

이상 내가 미국과 영국에서 만난 3명의 조선족들은 조선족들 가운데서 널리 알려진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나 이들이 정직하게 살고 있거나,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면서 사는 방식, 근면하게 노력하면서 사는 방식은 급격한 사회변화를 거치면서 가치관과 정체성에서 혼돈을 많이 경험하는 조선족들에게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생각된다.

조선족은 어디로 가는가?

오늘날 조선족가족중에 중국에서만 사는 경우가 적을 것이다. 중국, 한국, 일본, 미국 등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사는 가족이 너무나도 흔하다. 나의 가족의 경우를 보아도 내가 1988년에 일본에 유학하고 일본에 정착한 관계로 형제의 자식들을 여러 해에 걸쳐 일본유학을 주선해주고 그들도 유학을 마치고 일본에 정착했는데 현재 일본에는 조카들 가족만 7가구가 된다. 

나의 형제들은 1990년대까지 외국에 나가는 법이 없었는데 2008년에 넷째 누님이 한국인과 결혼한 시누이의 주선으로 한국에 나갔고 그 후로 누님의 딸도 한국에 나가 가정을 이루고 어머니와 같이 한국에 장기체류하고 있다. 그 사이 매형이 막벌이 노동중 사고로 사망하는 비극도 경험했다. 둘째 형님도 처가집 형제의 주선으로 2014년에 한국에 나가 형수와 간병인으로 일하면서 장기체류하고 있고 그 사이 딸이 한국에 나가 부모와 같이 살고 아들 부부는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이러다나니 생존해있는 형제들 중 이제는 큰 누님과 셋째 형님부부만 중국에 남아있고 여러 형제들의 자식들은 일본, 한국. 캐나다에 흩어져 살고 있다. 오히려 중국에 소수의 친척만 남게 됐다.

이상이 나의 형제들 가족의 실상인데 조선족의 많은 가족의 실상이 엇비슷할 것이다.

조선족은 19세기 후반에 조선 함경도 지역의 대기근을 피하여 두만강 건너편의 간도로 이주한 것을 시초로 중국에서 150여년에 이르는 정착과정을 거쳤고 1949년에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되고 조선족이라는 민족명칭이 생기고 집거지역에 민족자치제도가 실행되면서 중국의 동북지역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민족공동체를 오래동안 유지해왔다. 

그러나 주지하다 싶이 1980년대부터 시작된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 이후, 보다 좋은 삶을 찾아 동북의 전통적인 거주지역에서 연해지역으로 조선족의 대규모 이주가 시작되었고, 이어서 고국인 한국으로 수십만의 조선족이 나가게 되었고, 자식벌세대는 일본, 미국 등 나라로 많이 나가게 되었다. 

이렇게 국제적으로 흩어지고, 디아스포라로서 살아가게 되었으니 중국의 동북지역에서 오붓하게 민족공동체를 유지하던 시절이 옛날 얘기가 되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선조들이 피땀으로 개척하고 세운 땅과 마을이 일부 사라지고 고향을 상실하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150여 년전에 두만강, 압록강을 건너 중국에서 살길을 찾았던 조선인, 중국에 정착하면서 중국의 소수민족인 조선족으로 정립된 사람들, 지금 또 한번 격변의 시대를 맞이하여 새로운 역사를 써가고 있다. 수십년 후의 조선족사회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조선족은 어디에서 살든지 보다 좋은 삶을 살아가고 조선민족으로서 민족성과 중국에 대한 애정을 항상 지닐 것이라 믿는다.

아리랑 고개를 넘어서

일본과 미국에서 조선족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관찰해보면서 조선족은 유난히 생명력이 강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어디에 나가도 적응을 잘 하는편이고 뿌리를 잘 내린다. 미국같이 산설고 물설고 언어장애가 큰 나라에 가서 단기간에 정착을 해나가는 것을 보면 정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일본에서도 다들 맨손으로 바다를 건너와 사업을 일으키고 삶의 터전을 마련하여 어엿한 조선족사회를 구축하고 있지 않는가?!

캘리포니아의 어느 한국인 가게에서 중국의 조선족을 화제로 얘기를 나누었는데 가게주인이 중국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니 세상 어디에 가서 살 수 없겠는가하면서 조선족의 생명력을 높이 평가했다. 잘 생각해보면 조선족은 가능성이 많은 사람들이다. 조선민족으로서의 민족성을 항상 지니고 중국에서 자라서 유구한 문명의 지혜를 터득하고 또 국제사회에서 선진적인 문명의 제도와 규범을 빠르게 받아들인다. 다언어, 다문화의 소양을 잘 갖추어 어느 나라에서 살아도 적응할 수 있다. 

중국 국내와 한국, 일본, 미국 등 국제사회에 흩어져 살아가는 조선족의 모습을 널리 관찰해보면 우리들의 희망이 보인다. 우리민족의 민요에 나오는 '아리랑고개', 그것은 분명 희망을 찾아서 넘어가는 고개일 것이다. 현실의 고난을 극복하면서 희망을 찾아서 넘어가는 '아리랑고개', 우리 모두는 지금 또 하나의 '아리랑고개'를 넘어가고 있는 것이리라?!


심사평

응모글 제43편 심사평「일본에서 쓰는 아리랑의 고개」 
심사위원 전은주 문학평론가, 재한동포시치료연구회 대표


이 글은 님 웨일즈의 『아리랑의 노래』(Song of Ariran) 이야기로 시작된다. 『중국의 붉은 별』의 저자 에드거 스노의 아내인 님 웨일즈는 이 책에서 마르크스주의자이며 항일혁명가인 김산을 취재하여, “조선인들의 치열한 저항과 불굴의 투쟁을 생동하게” 그려냈다. 책에서 김산은 천부적으로 지도자의 자질을 타고난 진보적 사고를 지닌 투사로, 진실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순례자 등으로 묘사된다. 또한 “이 책이 출간되지 않았다면 장지락이라는 조선혁명가는 역사의 기억속에서 망각” 되었을 수도 있다.

님 웨일즈의 『아리랑의 노래』를 소개한 필자는 이제 천오백자나 되는 긴 이야기로 자신의 <일본에서 쓰는 아리랑의 노래>를 전개한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독자는 김산의 투쟁사와는 또 다른 재일조선족의 투쟁사를 기대하게 된다. 

필자는 30여 년이 넘는 세월을 일본에서 보냈다. 그러면서 수많은 조선족과 만나 서로 교류하고, 또 여러 단체의 결성에도 관여했다. 그리하여 필자는, “수많은 조선족과 함께 우리가 살아온 이야기, 청춘과 중년의 시절 국경을 넘나들면서 뜨겁게 살아온 삶의 기록들도 분명히 우리들의 ‘아리랑’이 아닐까 하고 자문”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과정에서 있었던 수많은 에피소드나 가슴 저린 이야기들이 생략된 채 사실 기록에만 집중되어 있어 『아리랑』을 읽는 듯한 감동은 가지지 못했다. 물론 “조선족들이 모이면 술이나 마시는 기풍을 없애려고 술모임을 거의 가지지 않기로 했다”는 구절에서는 삶에 대한 그들의 진지한 태도를 엿볼 수 있어 뭉클하기도 했다.

한편으로 이 글은 재일조선족 단체 결성에 대한 생생한 자료이자 기록이다. 최초에 결성한 《동방학우회》에서 시작된 조선족 모임은 그 이후 《연변대학일본학우회》, 《천지협회》, 《중국조선족연구학회》 등으로 발전되고,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쉼터미디어》, 《세계한인무역협회치바지회》, 《재일조선족축구협회》등 여러 성격을 지닌 단체가 결성된다. 그리고 2010년대에는 《재일조선족경영자협회》, 《연변일중일본학우회》, 《일본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 《우리세미나》, 《재일조선족친목회》등이 생겨났고 현재 일본에는 조선족 단체가 30개나 있다. 필자는 이러한 단체의 출발과 목적 그리고 활동 내역에 대해서도 상세히 적음으로써 단체모임 결성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재일 조선족 사회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이 글은 한 편의 소중한 자료가 될 수 있다.

이외에도 필자는 미국과 영국에서 만난 3명의 조선족 인사들 (김만수 박사, 박영애 원장, 박송림 선생)과의 만남도 적었다. 조선족들이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어떻게 정착하고 살아가는지를 단편적으로나마 보여주고자 하는 필자의 노력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조선족들은 저마다의 ‘아리랑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이제 ‘조선족은 어디로 가는가?’라는 화두를 내세우며 조선족의 미래 전망을 그린다. 

“중국 국내와 한국, 일본, 미국 등 국제사회에 흩어져 살아가는 조선족의 모습을 널리 관찰해보면 우리들의 희망이 보인다. 우리민족의 민요에 나오는 아리랑 고개, 그것은 분명 희망을 찾아서 넘어가는 고개일 것이다. 현실의 고난을 극복하면서 희망을 찾아서 넘어가는 아리랑 고개, 우리 모두가 지금 아리랑 고개를 넘는 것이 아닐까?”

이는 필자의 희망사항이자, 모든 조선족들의 희망사항일 것이다. 


심사위원 소개


황유복 프로필


•1966년, 중앙민족학원 력사학부 민족사 전공졸업.
•1966년 7월부터 중앙민족학원에서 조교로 봉직.
•1987년 9월~1988년 12월, 미국 하버드대학 교환교수.
•1984년부터, 미국, 일본, 캐내다, 소련, 몽골, 한국, 오스트레일리아 등 20여 개 대 학에서의 강의 경력.
•1972년, 중앙민족대학 조선어문학과 창설
•1993년, 중앙민족대학 한국문화연구소 창설
중앙민족대학 민족학과사회학학원 박사생지도교수 •(2013년 은퇴)
•1989년 3월-2013년6월,(北京市民办教育法人)북경조선어학교 창설(1993 후속으로 심양, 단동, 길림, 장춘, 하얼빈, 목단강, 후허호트, 석가장, 위해, 해구 등 10개 도시에 분교 설립. 무료로 한국어교육실시.
•현재, 중앙민족대학 한국문화연구소 소장. 일본 아시아경제문화연구소 최고학술고문, 중국조선민족사학회 명예회장, 중국조선사연구회 명예회장, 연변조선족자치주 사회경제발전고문, “China Daily(中国日报)” 동북아국제관계평론가(特约专家),  중국텔레비전예술가협회 중일한PD포럼자문위원,  《중국민족》사 고문 등.


김학송 프로필


•1952년 길림성 도문시 출생.
•장춘 야금지질학교 지질학과 거쳐, 연변대학 조선어문학부 졸업.

•선후로 도문시 문화국창작실 주임, 연변문학
월간사 주임편집, 연변가무단 문학창작원 등을 지냄.
•국가1급작가.
•현재 연변 시인협회 부회장, 연변 시랑송협회 고문.
•1980년 문단에 데뷔.
•해내외에서 시, 가사, 동시, 수필 등 여러 쟝르의 문학저서 30여권 상재.
•전국소수민족문학창작 “준마상”, 단군문학상, 해외동포문학상 등 수상 경력 다수.


이동렬 프로필


•1988 연변대학교 통신학부 조선어문전업 졸업 
•1983년~1992년 9월 길림성 서란시 조선족중학교(고등학부) 고급교사
 •1992년9월~2006년 길림성 용정시 교육TV 총편집
•2006년 1월~ 2012년 5월 한국 동북아신문 편집국장
•2012년 5월~ 현재  한국 동북아신문 사장/대표 
•2018년 10월~ 현재 중국신문(中国新闻 한글판) 차이나워크 잡지 편집주간 
•현재 <도서출판 바닷바람> 발행인, 한국 <동포문학> 발행인, 재한조선족작가협회장(연변작가협회 재한조선족문학창작위원회 주임). 재한동포문인협회 초대회장/현대표. 중국작가협회 회원, 사)한국문인협회 남북위원회 위원. 
•장편소설집 : 《고요한 도시》, 《낙화유수》 출간. 
•중단편소설집 : 《눈꽃서정》, 《토양대》 출간.
•수상 : 연변조선족자치주 진달래문예상, 연변작가협회 문학상, 천지문학상, 도라지문학상, 해란강문학상, 흑룡강신문 (장편)신춘문예상, 재외동포문학상 등 10여 차.
외, 한중문화교류대전, 한중일문학세미나 등 조직하고 한중문화교류대상, 동포문학상, 서울국제작가상 등 시상. 


서옥란 프로필


•1997년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연변대학교 특별초빙교수, 신문방송학과 교수, 박사지도교수.
•주요 연구영역: 미디어와 사회, 대중문화, 국제커뮤니케이션
•선후하여 서울대학교 언론정보연구소 중국국가교육부 파견 연구교수, City University of Hong Kong, Center for Communication Research 중국대륙우수청년방문학자, 한국고등교육재단 IESF방문학자 등을 지냈다. 중국 국가급 성급 등 다수 프로젝트를 완성했고 “미디어와 권력의 게임:박근혜탄핵안보도로부터 본 한국미디어생태환경의 현황”, “한국미디어의 싸드 보도 프레임연구”등 30여편의 논문을 국내외 학술지 발표했으며, 《매체와 대중문화》, 《중국조선족 대중전파와 문화발전》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제1회 연변문학 윤동주문학상 신인상(평론부분)수상, 《신문기자》잡지“올해의 10대 우수논문상”등을 수상. 


전은주 프로필


•도문 량수 출생, 2005년 연변대학 조문학부 입학, 
•2012년 동대학원 문학석사학휘 취득, 2019년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 박사학위 취득. 2020년부터 연세대학교 글쓰기 강사로 재직 중.
•2008년 한국 계간 『창작21』 로 등단하여 다수의 시와 칼럼, 문학평론을 발표. 2012년 『시향만리』 신인상, 2020년 『동포문학』 시부문 최우수상, 2021년 혜산박두진 문학상 제1회 『아시아시선상 수상』.
•연변작가협회 평론분과 회원, 한국문인협회 시분과 회원. 2019년부터 재한조선족작가협회 부회장, 재한동포문학연구회 부회장으로 활동. 2022년부터 재한동포시치료연구회 대표로 시치료 프로그램을 운영.
•논문으로 「재한조선족 디아스포라들의 ‘집 찾기’」 (2017),「재한조선족 디아스포라 정체성의 위기와 자아성찰」 (2017),「한중수교 이후 재한조선족 디아스포라 시문학에 나타난 정체성 연구」(2018),「조선족의 ‘역사적 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시론」(2019),「2000년대 이후 재한조선족 소설 연구 (2020),「중국 망명객 신규식의 디아스포라 시문학 연구」(2021),「재한조선족 문학의 ‘대림동’ 재현양상」(2021),「재한조선족 시문학의 형성과 인식의 변모연구」(2022) 등이 있다.


랑독과 음악편집 담당 소개


윤련순 프로필


•원 연변TV방송국주임아나운서, 방송지도, 연변작가협회회원
•전국방송사회작품평의에서 <매주경제> 국가 1등상(2008,12)
•제6기 전국조선말방송우수작품평의 1등상 (2001년,10) 등 국가와 성 주 우수작품 평의에서 수십차 수상
•《TV방송에서 아나운서의 언어와 MC언어의 특징 (중국조선어문 2016.6), 《 아나운서의 시각에서 본 TV뉴스문의 특성 및 리해 》(중국조선어문2017.1),《 잔디의 고집》(연변문학 2016.9),《소통의 장을 열어가는 열쇠》(청년생활2014.12)등 론문,수필 20여편 발표


장련 프로필


•2005. 9-2007.3 연변주라지오방송국 아나운서《가요데이트》진행
•2007.4-2019.8 훈춘라지오TV방송국 아나운서《훈춘뉴스》진행
•2020.3-   북경정음우리말학교 한국어강사


변소화 프로필


•주식회사 카와 STUDIO AKIRA 대표
•동북사범대학 음악학과 본과졸업
•2009년 주식회사 카와 설립
•일본에서 사진작가로 활약
•재일조선족운동회 회가 <함께해요 미래를> 작곡

기업 협찬 배너

2022년 세계 조선족 글짓기 대회 
후원과 협찬 리스트


후원 단체 리스트

1. 사단법인 전일본중국조선족련합회
2. 사단법인 일본조선족경영자협회

협찬 기업 리스트

1. 주식회사 A-YO상사(Caraz): 전심혁사장
2. 전일화부동산협회: 金山張虎회장
3. 글로벌일통 주식회사: 권호군사장
4. 주식회사 에무에이: 마홍철사장
5. 주식회사 아시안익스프레스: 리룡식사장
6. 주식회사 G&T: 박춘화사장 
7. 주식회사 플램핫: 리승희사장
8. 쉼터물산: 김정남사장
9. 주식회사 베스트엔터프라이즈: 리성호사장
10. 삼구물산 주식회사: 리성사장
11. 시루바포또 유한회사: 서성일사장
12. 주식회사 JCBC: 엄문철사장   
13. 마즈도향양양(松戸香羊羊): 권룡산사장  
14. 주식회사 타겐고시스템연구소: 김만철사장
15. 주식회사 위츠테크놀로지: 전호남사장
16. 주식회사 HANAWA: 리성룡사장
17. 주식회사 아후로시: 上田一雄사장
18. 동화(東和)솔루션엔지니어링구주식회사: 최장록사장
19. 주식회사 PLZ: 박금화사장
20. 스튜디오 아키라: 변소화사장 
21. 카바야한방연구소: 로홍매소장
22. 주식회사 ZORUHARA: 이태권사장

개인 협찬 리스트

1.최우림:중국농업대학 박사 전일본중국조선족연합회 부회장
2.장경호:신일본미술협회 심사위원 연변대학일본학우회 회장
3.김광림:일본니가다산업대학교 교수 일본도쿄대학 박사
4.리대원:재일장백산골프우호회 회장
5.박춘익:주식회사 BTU사장
6.리 숙:주식회사 미사끼(実咲)사장
7.최운학:일본훈춘동향회 회장
8.구세국:재일조선족배구협회 회장
9.박진우:金子自動車 본부장 南越谷점장
10.김정순:재일조선족심목회

일본조선족문화교류협회 계좌안내:
銀行名:三菱UFJ銀行 日暮里支店(普) 0554611
名義:一般社団法人 日本朝鮮族経済文化交流協会
【ニホンチヨウセンゾクケイザイブンカコウリユウキヨウカイ】

후원과 협찬에 관한 문의는 
일본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 메일주소로 보내주세요.
메일주소:info@jkce.org

후원금과 협찬금은 입금을 확인한 후
【一般社団法人 日本朝鮮族経済文化交流協会】명의로
령수증을 발급해드립니다.


【우수상】저녁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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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태명숙

<저녁 노을>과 같은 황혼길에서                                         
                                         
2022년 Caraz(카라즈)컵 세계조선족 글짓기대회가 11월 3일 시상식과 함께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였습니다. 우선 이번 응모를 개최한 일본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와 협력매체인 일본의 <쉼터>, 중국의  <조글로>와 한국의 <동북아신문> 그리고 후원 단체들과 협찬에 동참하신 개인과 기업들, 감사합니다. 

이번 글짓기대회에서 입선작을 아름다운 목소리로 랑독해 주시고 55편의 입선작에 하나하나 심혈을 기울여 평을 달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시상식 집행위원장을 담당하신 박춘화 선생님, 그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나의 글을 구독해 주시고 예쁜 댓글로 응원과 격려를 보내주신 많은 분들, 대단히 감사합니다. 

생계라는 삶의 무게에 짓눌려 묵묵히 인생길을 걸어오면서 글을 쓴다는 것은 저에게는 꼭 마치 남쪽 하늘에 걸려 있는 아련한 아름다운 무지개를 보는듯한 절절한 념원일 뿐이였습니다. 두 자식을 모두 출가시키고 조금 한가해 졌을 때 저는 문뜩 마음 한 구석이 어딘가 허전하고 공허하면서 텅 비여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 마음의 빈 자리에 무언가 해서 채우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충동을 느꼈습니다. 비록 늦은 나이지만 젊은 시절에 그토록 절실하게 쓰고 싶었던 글을 써 보리라 마음을 크게 먹고 필을 들었습니다. 

시작이 절반이라 아마 이것이 제가 <저녁 노을> 이란 이 처녀작을 쓰기 시작한 계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환갑이 썩 지난 나이에 그것도 첫 작품으로 세계조선족 글짓기대회란 큰 국제 무대에 도전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우선 <저녁 노을> 이라고 제목부터 달아 놓고 황혼을 담은 우리들의 사는 이야기를 구상하면서 제가 살아온 인생과 귀결시켜 글로 적었습니다. 몇일 낮과 밤을 지새우면서 드디여 응모작 <저녁 노을> 을 완성하게 되였습니다. 글이란 내가 살아온 삶이고 인생이며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의 꿈과 희망을 설계하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이번 세계조선족 글짓기대회라는 이벤트에 우리들의 사는 이야기 주제를 담은 제 응모작을 투고하면서 솔직히 그리 큰 기대와 희망을 걸지는 않았습니다. 총 125편의 응모작에서 55편이 입선작으로 선정되였는데 나의 작품이 운좋게 생각지도 못한 <우수상> 이란 가슴 벅찬 영예를 받아 안아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도저히 믿기지가 않아 제 살을 꼬집어 보기도 했었습니다.

진주조개는 상처를 진액으로 감싸면서 뼈를 깍는 아픔으로 진주를 키운다고 합니다. 이 세상 모든 어머니들도 출산의 고통으로 모진 진통을 참아가면서 고귀한 새 생명을 탄생시킵니다. 진주 조개가 상처의 아픔을 진액으로 감싸면서 진주를 키우듯이,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로 산모가 출산을 위해 견디기 힘든 진통을 참아내는 그런 인내심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또 배 아프게 낳은 자식들을 마른자리 진자리 가려가면서 쥐면 부서질까, 불면 날아갈까, 애지중지 키우는 그러한 정성도 글을 쓰는데 마찬가지로 필요한 것 같습니다. 

글이란 좋은 아이디어로 요리조리 살피고 어루쓸면서 다듬고 또 다듬어야 마침내 빛을 볼 수 있는데 그 빛으로 인해 보람과 희열이 뒷 받침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번 55편의 우수한 입선작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읽으면서 울고 웃는 우리들의 삶의 이야기가 한 폭의 인생 드라마처럼 진한 감동으로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매 한편의 문장마다 나에게는 배움의 계기를 주는 보물과도 같은 우수한 작품들이였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심사를 맡으신 서옥란 교수님께서 저의 <저녁 노을> 을 읽어주시고 심사해주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영광이고 얻기 힘든 행운이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심사평에 "자신과 자연과의 소통 그리고 내면적 치유, 코로나로 갑자기 학교에 갈 수 없고 직장에 나갈 수 없으며 친구들을 볼 수 없는 사태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 모습을 잘 그려냈고"  "문득 새는 새라도 날지 못하는 타조가 생각난다. 날개가 있어 펴 보지만 날지를 못하니 얼마나 안타까울까, 날지 못하는 타조로부터 자신의 처지와 연계시키고 있는데 문학적 상상력이 돋 보인다. 인간의 삶도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 없음을 한 폭의 풍경화처럼 보여 주면서 황혼에 비치는 들녘은 어두운게 아니라 오히려 더 황홀한 것처럼 여러가지 빛깔로 아주 천천히 익어가면 어떨까, 라면서 자신을 관조한다" 는 높은 평가를 해주셨습니다. 반면에 "전반 이야기가 평면적으로 흘러 전형적인 세부 일화를 장면화하고 형상화하는데 조금 부족하다" 는 고귀한 지적도 해주셨습니다. 앞으로 글을 쓰는데 이 점을 명심하면서 더 많은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우리 삶의 희로애락을 담은 더 좋은 글들을 많이 쓰면서 <저녁 노을> 과 같은 아름다운 인생의 황혼길에서 참 곱게 늙어간다는 소리도 가끔씩 들어가면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끝으로 늘 변함없는 마음으로 언제나 나의 곁에서 묵묵히 지켜보고 응원하면서 큰 힘과 용기를 준 사랑하는 가족과 지인들, 그리고 나의 글을 구독해 주시고 멋진 댓글로 응원과 격려를 보내주신 세계 방방곡곡에 계시는 이름도 알지 못하는 많은 분들, 다시 한번 허리 굽혀 인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더 많이 사랑하겠습니다.
더 좋은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2022년 11월 20일 태명숙)

【응모글 제2편】저녁 노을

글: 태명숙 랑독:박금화 음악편집:변소화

코로나19로부터 델타변의, 오미크론 등 신종감염이 현재 전세계를 공포에 떨게 하고있다. 이로 인해 제한적인 일상생활을 보낼수 밖에 없는 요즘이다. 야외활동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레 지인들 만날 기회가 적어졌고 활동적인 일들이 제한되여 있어 우울감에 빠질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가끔 할 때가 있다.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던지 다시 한번 생각되는 계기가 된것 같다. 힐링이란 단어가 무색할만큼 사소한 일상이 정말 그리워진다. 좋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같이 등산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면서 각종 취미생활도 좋지만 요즘은 인원이 제한되여 있어 나 개인의 편의보다 공동체 시민 의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스스로 방역수칙을 잘 지키고 웬만한 일은 자제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라고 본다.

그래서 혼자만의 소박하지만 사소한 일상에서 때로는 걷는 운동으로 시작하면은 둘레길 그 자체가 아름다운 배경이 되고 일정한 거리를 두고 걷는 사람들의 말소리마저 로맨틱해지는 느낌이다. 깊은 산도 좋지만 얕은 산 그렇지 않으면 그 주변에 있는 산아래 둘레길도 괜찮은 운동 코스인 것 같다.

완만한 산행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자연도 즐길 수 있고 명상도 즐길 수 있어 일거양득인 것 같다. 

산이란 우리에게 신선함과 맑은 공기를 선물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걷는 내내 산 공기의 촉촉함이 매번 숨을 들이킬 때마다 페안도 그 습기를 빨아들여 촉촉해지는 기분이 든다. 숲이 울창한 소나무가 있는 곳을 지날 때마다 거기서 나오는 피톤치드가 요즘 코로나로 힘든 시기에 면역력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힐링을 제대로 한다, 싶을 정도로 기분이 상쾌해진다. 친한 친구 한 두 명 아니면 혼자라도 김밥 한 두 줄 말아 거기에다 원터치 텀블러에 담은 뜨거운 물로 커피 한잔 타서 산공기와 함께 마시는 재미는 느껴본 사람만이 알 것 같다.

산도 좋지만 나로선 안양천 걷기 운동은 주로 저녁시간을 이용한다. 해지는 저녁 노을를 폰안에 담기 위해서다. 수평선 너머로 넘어가는 해를 보면서 중간중간 상념에 젖어 멍을 때리기도 하면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저녁노을의 색과 분위기를 감상한다. 해지는 석양은 그저 아름답다는 그 느낌보다, 황홀하고 정열적이여서 글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같은 초보가 그냥 찍어도 그림이 되고 작품이 되는 그런 풍경이다. 노랗던 해는 주위를 어느틈엔가 붉은색으로 물들이고 햇살 비치는 부분은 여러가지 색깔로 빛난다. 옅은 구름이라도 있는 날엔 그 구름색이 환상적으로 변하면서 한 곳에 있지 않고 마지막을 멋지게 남김없이 불태운다.  남은 인생을 화려하게 불태우고 싶다는 우리들의 소박한 소망처럼 말이다. 

화려한 인생이란 돈이 넘쳐나게 많다던가, 아니면 남자들은 끼가 넘치고,여자들은 성형으로 얼굴을 예쁘게 다듬는 것도 아니며, 또한 대단한 명예도 아니면서, 그저 평범하고 수수하게 젊었던 세월에 어깨에 짊어졌던 모든 짐을 내려놓고 무리하지 않으면서 하나 둘씩 욕심을 버리고 마음도 비우면서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면 된다고 본다. 

젊었을 때는 내가 늙는다는 것을 생각조차 할 겨를이 없어 남의 얘기로만 생각했었다. 어느날 갑자기 허리 펴고 어디쯤 왔을까? 가던 길 뒤 돌아보니 쫒기듯 팽이 삶처럼 살아 온 길 어제 같은데, 한 세월은 이미 가버리고 뛰느라 어디에 와 있는줄도 모르고 자식들 키우면서 뒷 바라지하고, 또 그 것들 성가시키고 손군들 보랴, 정신 없었는데 어느덧 듣기도 거북한 황혼이란 문턱 하나 던져주고 훌쩍 간 세월이다.

지나온 세월이 긴 삶의 여정이라면, 그 길에서 이제는 결승선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결승선에서 건강의 적신호로 몸이 삐꺽대면서 마찰이 생겨 여기저기 아프고 뒤늦게 보수공사로 이곳저곳 땜질이다. 언제부터인가 티비에서 그렇게 좋아하는 개그프로를 봐도 웃음이 별로 없어지고 건강상식 프로를 봐도 나한테 하는 얘기처럼 들린다. 황혼에도 사춘기가 있지 않을가 싶을 정도로 예민해진다.

문득 새는 새라도 날지 못하는 타조가 생각난다. 날개가 있어 펴 보지만 날지를 못하니 얼마나 안타까울까?

나름대로 허공을 향해 힘껏 날개짓을 해보지만 날지 못하고 주저앉는 저 타조는 높은 창공을 훨훨 나는 것이 영원한 꿈일지도 모른다. 날고 싶은 간절함에도 날지 못하는 타조의 비애가 느껴진다. 세월이 훌쩍 주고 간 황혼은 날개가 있어도 날지 못하는 타조처럼 생각은 간절한데 젊었을 때와 달리 힘이 딸리고 몸이 민첩하지 못한 우리와 비교하게 된다. 스치고 지나간 청춘시절의 무궁한 힘과 열정을 그때 그때 저장 창고라도 있어 조금씩 저장해서 지금 쓰면 얼마나 좋았을까? 말도 안되는 어리석은 생각을 할때가 가끔씩 있다. 

세월을 거슬러 나이를 먹는데 몸은 젊었을때처럼 유지되기를 원하는 것 자체가 욕심인 것같다. 이 정도라도 감사히 받아들이고 아침 저녁으로 같은 시간에 일어나 잠드는 습관과 영양가 있는 음식을 섭취하면서 꾸준한 걷기 운동으로 최대한 나 자신을 챙기면서 살기로 한 마음가짐으로 받아들이면 편할 것같다. 세월은 그 누구도 비켜가지 못한다. 

요즘은 60이면 청춘이라고들 한다. 옛날 우리 어머니들 시대엔 어르신들이 60이면 장수했다고들 이웃들간에 축복의 의미로 환갑을 쇠면서 온 동네를 청해 축배도 건네고 떠들썩했지만 요즘은 젊은 사람이 환갑잔치 하면서 바쁜 사람을 오라가라 귀찮게하는 것 같아 페를 끼치는 일이라 생각되어 당사자들도 환갑잔치라고 청할 생각도 없고 지인들 또한 갈 생각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저 가족들끼리 조촐하게 생일 삼아 시국이 시국인만큼 집에서들 조용히 지낸다. 고령화 시대를 접하면서 누구나 오래 사는 것도 좋지만 사는 날까지 크게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게 바램일 것이다. 즉 량보다 질을 중요시한단 얘기다.

설 명절을 지나고 보니 또 한살을 먹는구나 하는 허무감에 좀 서글프지만 나이는 아무 대가 없이 허투로 먹는게 아니라고 본다. 청춘시절은 무조건 도전이라고 본다면 황혼은 돌 다리도 두드리고 가라는 속담처럼 신중한 판단 능력이 겸비되여 있어 도전은 어려우나 대신 실수는 적다고 본다. 젊은 시절엔 남들과 비교하면서 경쟁하고 끊임없는 도전 의식이라면 황혼기엔 꾸준한 자기 성찰을 통해 자신을 뒤돌아보면서 주변 사람들에게도 인정받는 참 곱게 늙어간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사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고 본다.

나이 들면서 점점 좋아지는 것 중에 하나가 주변을 살펴 볼 여유가 생겼다는 점이다.살아가는데 꼭 필요한건 생각보다 많지 않다. 세월이 퍽 지난 요즘에야 그때는 너무 절절하고 절실한 것들이 지금은 무용지물이 되여 버리고 그렇게 빨리 뛰지 않아도 될 일들, 또 그렇게 가슴 졸이면서 살지 않아도 될 기억들이 너무 많은 것같다. 꼭 그렇게 아니여도 이렇게 살고 있는데 말이다.

머리속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넘치는 물건을 정리하듯 꽉찬 생각들로 스트레스 받지 말고 조금씩 머리속을 비우면서 스스로 내려놓을 수 있을 때 주변을 정리하면서 편하고 여유로운 삶을 사는게 현명할 것 같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생명의 힘과 에네지를 품고 있는 꿈뜰대는 봄의 기운은 아닐테고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일출은 더욱 더 아닐 것이다. 

거울을 보면 얼굴의 주름은 내가 살아온 인생이고 희끗희끗한 머리 새치는 성숙의 상징이라 할까? 나이를 한 살 두 살 거슬러 오를 때마다 로련해지고 의젓해지는 느낌, 예를 들면 일년 사계절에서 황금계절인 가을에 열매가 익어가는 것처럼 우리네 황혼도 그렇게 익어가는 것이 아닐까? 

그 세월속에 부딪치면서 살아온 보석같은 지혜와 능력은, 앞으로의 남은 여생길에, 든든한 디딤돌로 자리매김하면서, 저 멀리 석양속에 붉게 타는 저녁노을처럼, 여러가지 빛깔로 아주 천천히 아름답게 늙어가면 어떨까?


심사평

응모글 제2편 심사평「저녁 노을」 
심사위원 서옥란 연변대학교 특별초빙교수, 신문방송학과 교수, 박사지도교수


자신과 자연과의 소통, 그리고 내면적 치유

수필은 붓이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고도 한다. 이 글은 무형식과 무기교적인 작품처럼 보이지만 논리적이고 차분하게 “마음이 가는대로” 자신의 생각을 전개해나가고 있다. 갑자기 학교에 갈 수 없고, 직장에 나갈 수 없으며, 친구들을 볼 수 없고, 지병을 앓는 사람도 병원 치료를 받을 수 없는 평범한 일상이 사라진 고통의 코로나 시대를 그리면서, 이 비상사태를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다.

작가는 코로나로 인해 파괴된 일상으로부터 소소한 삶의 소중함을 이끌어내면서 산행과 명상, 촬영 등 저자의 일상적인 삶에서 코로나 시대를 현명하게 극복하는 생활방식을 제시하고 독자들의 공명을 이끌어낸다. 

자연에 대한 시선으로부터 다시 자신의 내면의 세계로 독자들을 끌어들인다. “문득 새는 새라도 날지 못하는 타조가 생각난다. 날개가 있어 펴 보지만 날지를 못하니 얼마나 안타까울까?” 날지 못하는 새 타조로부터 자신의 처지와 연계시키고 있는데 문학적 상상력이 돋보인다. “언제부터인가 티비에서 그렇게 좋아하는 개그프로를 봐도 웃음이 별로 없어지고 건강상식 프로를 봐도 나한테 하는 얘기처럼 들린다. 황혼에도 사춘기가 있지 않을가 싶을 정도로 예민해진다. 

”중년 이상이라면 누구나 마음을 찌를만한 말이다. 인간의 삶도 자연의 섭리에 거스를 수 없음을 한폭의 풍경화처럼 보여주면서, “나이 들면서 점점 좋아지는 것 중에 하나가 주변을 살펴 볼 여유”임을 발견하고, 인생의 황혼에 대한 남다른 의미찾기를 나선다. 황혼이 비치는 들녘은 어두운게 아니라 오히려 더 황홀한 것처럼 “여러가지 빛깔로 아주 천천히 아름답게 늙어가면 어떨까?”라면서 자신을 관조한다. 

삶의 언저리에서 저자는 자신의 내면 그리고 대자연과 부단히 소통하면서 “세월속에 부딪치면서 살아온 보석같은 지혜와 능력”이라는 새로운 발견과 깊은 자아성찰을 보여준다. 이로서 나이를 들면서 누구나 맞이하게 되는 외로움과 무기력감과 번뇌 등에 대한 극복을 보여주고 있으며 내면적 치유를 이루어간다. 

글에서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전반 이야기가 평면적으로 흘러가서 전형적인 세부, 일화를 장면화하고 형상화하는데 조금 부족했다는 느낌이다. 


심사위원 소개


황유복 프로필


•1966년, 중앙민족학원 력사학부 민족사 전공졸업.
•1966년 7월부터 중앙민족학원에서 조교로 봉직.
•1987년 9월~1988년 12월, 미국 하버드대학 교환교수.
•1984년부터, 미국, 일본, 캐내다, 소련, 몽골, 한국, 오스트레일리아 등 20여 개 대 학에서의 강의 경력.
•1972년, 중앙민족대학 조선어문학과 창설
•1993년, 중앙민족대학 한국문화연구소 창설
중앙민족대학 민족학과사회학학원 박사생지도교수 •(2013년 은퇴)
•1989년 3월-2013년6월,(北京市民办教育法人)북경조선어학교 창설(1993 후속으로 심양, 단동, 길림, 장춘, 하얼빈, 목단강, 후허호트, 석가장, 위해, 해구 등 10개 도시에 분교 설립. 무료로 한국어교육실시.
•현재, 중앙민족대학 한국문화연구소 소장. 일본 아시아경제문화연구소 최고학술고문, 중국조선민족사학회 명예회장, 중국조선사연구회 명예회장, 연변조선족자치주 사회경제발전고문, “China Daily(中国日报)” 동북아국제관계평론가(特约专家),  중국텔레비전예술가협회 중일한PD포럼자문위원,  《중국민족》사 고문 등.


김학송 프로필


•1952년 길림성 도문시 출생.
•장춘 야금지질학교 지질학과 거쳐, 연변대학 조선어문학부 졸업.

•선후로 도문시 문화국창작실 주임, 연변문학
월간사 주임편집, 연변가무단 문학창작원 등을 지냄.
•국가1급작가.
•현재 연변 시인협회 부회장, 연변 시랑송협회 고문.
•1980년 문단에 데뷔.
•해내외에서 시, 가사, 동시, 수필 등 여러 쟝르의 문학저서 30여권 상재.
•전국소수민족문학창작 “준마상”, 단군문학상, 해외동포문학상 등 수상 경력 다수.


이동렬 프로필


•1988 연변대학교 통신학부 조선어문전업 졸업 
•1983년~1992년 9월 길림성 서란시 조선족중학교(고등학부) 고급교사
 •1992년9월~2006년 길림성 용정시 교육TV 총편집
•2006년 1월~ 2012년 5월 한국 동북아신문 편집국장
•2012년 5월~ 현재  한국 동북아신문 사장/대표 
•2018년 10월~ 현재 중국신문(中国新闻 한글판) 차이나워크 잡지 편집주간 
•현재 <도서출판 바닷바람> 발행인, 한국 <동포문학> 발행인, 재한조선족작가협회장(연변작가협회 재한조선족문학창작위원회 주임). 재한동포문인협회 초대회장/현대표. 중국작가협회 회원, 사)한국문인협회 남북위원회 위원. 
•장편소설집 : 《고요한 도시》, 《낙화유수》 출간. 
•중단편소설집 : 《눈꽃서정》, 《토양대》 출간.
•수상 : 연변조선족자치주 진달래문예상, 연변작가협회 문학상, 천지문학상, 도라지문학상, 해란강문학상, 흑룡강신문 (장편)신춘문예상, 재외동포문학상 등 10여 차.
외, 한중문화교류대전, 한중일문학세미나 등 조직하고 한중문화교류대상, 동포문학상, 서울국제작가상 등 시상. 


서옥란 프로필


•1997년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연변대학교 특별초빙교수, 신문방송학과 교수, 박사지도교수.
•주요 연구영역: 미디어와 사회, 대중문화, 국제커뮤니케이션
•선후하여 서울대학교 언론정보연구소 중국국가교육부 파견 연구교수, City University of Hong Kong, Center for Communication Research 중국대륙우수청년방문학자, 한국고등교육재단 IESF방문학자 등을 지냈다. 중국 국가급 성급 등 다수 프로젝트를 완성했고 “미디어와 권력의 게임:박근혜탄핵안보도로부터 본 한국미디어생태환경의 현황”, “한국미디어의 싸드 보도 프레임연구”등 30여편의 논문을 국내외 학술지 발표했으며, 《매체와 대중문화》, 《중국조선족 대중전파와 문화발전》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제1회 연변문학 윤동주문학상 신인상(평론부분)수상, 《신문기자》잡지“올해의 10대 우수논문상”등을 수상. 


전은주 프로필


•도문 량수 출생, 2005년 연변대학 조문학부 입학, 
•2012년 동대학원 문학석사학휘 취득, 2019년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 박사학위 취득. 2020년부터 연세대학교 글쓰기 강사로 재직 중.
•2008년 한국 계간 『창작21』 로 등단하여 다수의 시와 칼럼, 문학평론을 발표. 2012년 『시향만리』 신인상, 2020년 『동포문학』 시부문 최우수상, 2021년 혜산박두진 문학상 제1회 『아시아시선상 수상』.
•연변작가협회 평론분과 회원, 한국문인협회 시분과 회원. 2019년부터 재한조선족작가협회 부회장, 재한동포문학연구회 부회장으로 활동. 2022년부터 재한동포시치료연구회 대표로 시치료 프로그램을 운영.
•논문으로 「재한조선족 디아스포라들의 ‘집 찾기’」 (2017),「재한조선족 디아스포라 정체성의 위기와 자아성찰」 (2017),「한중수교 이후 재한조선족 디아스포라 시문학에 나타난 정체성 연구」(2018),「조선족의 ‘역사적 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시론」(2019),「2000년대 이후 재한조선족 소설 연구 (2020),「중국 망명객 신규식의 디아스포라 시문학 연구」(2021),「재한조선족 문학의 ‘대림동’ 재현양상」(2021),「재한조선족 시문학의 형성과 인식의 변모연구」(2022) 등이 있다.


랑독과 음악편집 담당 소개


윤련순 프로필


•원 연변TV방송국주임아나운서, 방송지도, 연변작가협회회원
•전국방송사회작품평의에서 <매주경제> 국가 1등상(2008,12)
•제6기 전국조선말방송우수작품평의 1등상 (2001년,10) 등 국가와 성 주 우수작품 평의에서 수십차 수상
•《TV방송에서 아나운서의 언어와 MC언어의 특징 (중국조선어문 2016.6), 《 아나운서의 시각에서 본 TV뉴스문의 특성 및 리해 》(중국조선어문2017.1),《 잔디의 고집》(연변문학 2016.9),《소통의 장을 열어가는 열쇠》(청년생활2014.12)등 론문,수필 20여편 발표


장련 프로필


•2005. 9-2007.3 연변주라지오방송국 아나운서《가요데이트》진행
•2007.4-2019.8 훈춘라지오TV방송국 아나운서《훈춘뉴스》진행
•2020.3-   북경정음우리말학교 한국어강사


변소화 프로필


•주식회사 카와 STUDIO AKIRA 대표
•동북사범대학 음악학과 본과졸업
•2009년 주식회사 카와 설립
•일본에서 사진작가로 활약
•재일조선족운동회 회가 <함께해요 미래를> 작곡

기업 협찬 배너

2022년 세계 조선족 글짓기 대회 
후원과 협찬 리스트


후원 단체 리스트

1. 사단법인 전일본중국조선족련합회
2. 사단법인 일본조선족경영자협회

협찬 기업 리스트

1. 주식회사 A-YO상사(Caraz): 전심혁사장
2. 전일화부동산협회: 金山張虎회장
3. 글로벌일통 주식회사: 권호군사장
4. 주식회사 에무에이: 마홍철사장
5. 주식회사 아시안익스프레스: 리룡식사장
6. 주식회사 G&T: 박춘화사장 
7. 주식회사 플램핫: 리승희사장
8. 쉼터물산: 김정남사장
9. 주식회사 베스트엔터프라이즈: 리성호사장
10. 삼구물산 주식회사: 리성사장
11. 시루바포또 유한회사: 서성일사장
12. 주식회사 JCBC: 엄문철사장   
13. 마즈도향양양(松戸香羊羊): 권룡산사장  
14. 주식회사 타겐고시스템연구소: 김만철사장
15. 주식회사 위츠테크놀로지: 전호남사장
16. 주식회사 HANAWA: 리성룡사장
17. 주식회사 아후로시: 上田一雄사장
18. 동화(東和)솔루션엔지니어링구주식회사: 최장록사장
19. 주식회사 PLZ: 박금화사장
20. 스튜디오 아키라: 변소화사장 
21. 카바야한방연구소: 로홍매소장
22. 주식회사 ZORUHARA: 이태권사장

개인 협찬 리스트

1.최우림:중국농업대학 박사 전일본중국조선족연합회 부회장
2.장경호:신일본미술협회 심사위원 연변대학일본학우회 회장
3.김광림:일본니가다산업대학교 교수 일본도쿄대학 박사
4.리대원:재일장백산골프우호회 회장
5.박춘익:주식회사 BTU사장
6.리 숙:주식회사 미사끼(実咲)사장
7.최운학:일본훈춘동향회 회장
8.구세국:재일조선족배구협회 회장
9.박진우:金子自動車 본부장 南越谷점장
10.김정순:재일조선족심목회

일본조선족문화교류협회 계좌안내:
銀行名:三菱UFJ銀行 日暮里支店(普) 0554611
名義:一般社団法人 日本朝鮮族経済文化交流協会
【ニホンチヨウセンゾクケイザイブンカコウリユウキヨウカイ】

후원과 협찬에 관한 문의는 
일본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 메일주소로 보내주세요.
메일주소:info@jkce.org

후원금과 협찬금은 입금을 확인한 후
【一般社団法人 日本朝鮮族経済文化交流協会】명의로
령수증을 발급해드립니다.


【우수상】예순, 새로운 출발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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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고송숙

예순에 만난 인연들 

<예순, 새로운 출발점에서> 이 글은 <세계조선족 글짓기대회>라는 큰 이름앞에 망설이고 고민하다 마감일 며칠을 앞두고 급급히 응모한 글입니다.

부족한 글을 세계라는 큰 무대에 올려주신 편집부 선생님들, 나의 글에 이쁜 옷을 입혀주고 날개를 달아주신 윤련순 선생님, 변소화 선생님, 심사해 주신 5명 심사위원 선생님들, 멋진 심사평을 올려주신 김학송 작가님, 나의 글을 공유해주신 중국의 <조글로>, 일본의 <쉼터>, 한국의 <동북아신문>에 허리 굽혀 고맙다는 인사를 올립니다.

일본에 응모글을 보낸 후 국내외 6,115명 구독자들의 뜨거운 사랑과 정성껏 보내주신 206편의 코멘트를 받으며 매일매일 행복했습니다.

경색이 끝나고 구독자 수 취합이 끝난 후에도 454명 독자들의 지속적인 사랑과 나의 글이 있는 심사평 글도 778 표라는 제일 높은 조회수로 관심을 보내주셨고 11월 3일에는 새벽부터 전화와 문자로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는 독자들의 응원 문자를 받으며 감동으로 목이 메였습니다.

응모에 늦게 참여하였지만 짧디짧은 시간에 조회수 1위로 오르고 보석같은 글줄의 코멘트를 받으며 하루하루가 설레였고 무한 감동이였고 기적의 연속이였습니다.

천사처럼 오작교 다리를 놓아주신 일본에서 주최한 <세계조선족글짓기대회> 덕분에 45년전에 헤여졌던 소학교 동창 조옥선님이 연락을 보내왔고 20대에 문학의 꿈을 키웠던 문학 소녀 최금숙님이 북경에서 나의 글을 읽고 37년만에 소식을 보내왔고 문학 강습반에서 함께 했던 김정학 동기도 친구가 공유한 나의 글을 읽고 연락을 보내와서 드라마나 영화의 한장면처럼 기적적으로 만났습니다.

이름 그대로 일본에서 주최하여 중국, 북경, 한국 등 곳곳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만났으니 세계 조선족들을 하나로 똘똘 뭉치게 만든 세계적인 대회였습니다.

나의 글을 읽고 취업했다는 소식, 취업준비로 학원 등록하고 자격증에 도전하고 있다는 소식을 많이 받았습니다.

<특수직종에 근무하는 지원사들의 삶의 현장과 고충 해결, 사회적 인정을 위한 바램>을 주제로 어느 언론팀의 취재요청을 접수했더니 황송하게도 멀리 서울에서 지역인 안성까지 찾아와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나의 한편의 글을 보며 네트워크의 힘이 크고 대단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나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6,000여명 구독자들의 응원을 받고 우수상이라는 큰 상을 받으니 내가 아닌 모든 장애인 지원사들을 대신하여 받은듯이 설레이고 뿌듯합니다.

상을 받은 후 어떤이는 기적이라 하고 어떤이는 행운이라 하고 또 어떤이는  코로나 시기에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독자들이 공감하고 감화하여 깨우침을 받았다고 하니 주최측에서 설정한 이야기성 화제성 등 조건과 부합되어 수상은 당연한 결과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당연은 없이 일생에서 받는 행운들을 이번 글짓기대회에서 다 받은 것 같습니다.

<글은 그 사람이다> 문인들은 모두 이렇게 말합니다.

예순, 새로운 출발점에서 라는 글이 나의 이름과 함께 모든 인연들에게 기억되고 더 성숙되고 더 익어가는 글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나의 글에 오랜 시선이 머물도록 열정적으로 응원하고 지지해준 독자들을 위해서라도 멋진 글로 보답해야 되겠습니다.

2022년은 나의 예순한돐 환갑년입니다. 

나의 환갑년이 세계라는 큰 무대에서 6천여명 구독자들의 관심과 응원속에서 206편의 소중한 환갑선물을 받고 주최측에서 특수제작한 <세계조선족 글짓기대회 우수상> 이라는 금빛나는 선물을 받았으니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환갑잔치로, 세상에서 제일 특별한 환갑잔치로 더 이상 부러울 것 없는 잊을 수 없고 자랑찬 환갑잔치를 보낸것 같아 뿌듯합니다.

2022년 카라즈컵 <세계조선족글짓기대회>를 기획하고 조직하고 진행한 일본 주최측 관계자분들과 나의 글을 아껴주고 응원해주신 구독자분들께 진심어린 감사를 올립니다.
예순에 만난 6,000여명의 인연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2022년 11월 6일 고송숙 올림)

【응모글 제48편】예순, 새로운 출발점에서

글: 고송숙 랑독:윤련순 음악편집:변소화

어느덧 올해 나이 예순이 되었다. 마음은 청춘인데 세월이 빠르다는 생각을 온 몸으로 느낀다. 백세 인생 중반을 넘어 예순의 문을 노크하니 건강관리에 신경 쓰이고 약병의 글씨가 아른거릴 때면 가슴 짠한 시간에 잠겨본다. 뒤돌아보면 한 남자의 아내로 두 딸애의 엄마로 안정된 직장에 근무하며 조용한 일상을 살아왔었다.

운명의 장난처럼 예순이 되는 나이에 평범하던 일상이 고요한 호수에 돌을 던지듯이 큰 파문을 일으키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코로나 확산여파로 2주 휴직이 4주가 되고 4주 휴직이 7개월로 이어지고 길고 긴 장기휴직 끝에 15년을 근무하던 식당 종업원 일에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코로나 직격탄을 온몸으로 맞고 십자로의 갈림길에 섰다. 인생 2막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헝클어진 실타래를 안고 있는 느낌이었다. 시작을 찾는 것이 힘들겠지만 시작이 있는 실은 끝이 있으리라고 굳게 믿었다. 지인들은 편하게 손주를 돌보라고 권유했지만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은 나는 여기에서 멈추고 싶지 않았다.

인생은 예순부터 시작이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니 지금부터 새롭게 시작하고 1년, 2년, 15년을 향하여 뛰어보자고 다짐했다. 하여 평소에 관심 있었지만 시간 때문에 못했던 일들을 다시 찾아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 공부부터 시작하였다. 끈기 하나로 몇 번의 코로나 검사와 힘든 실습 과정을 거쳐 "요양보호사 자격증" "장애인 활동지원사 자격증" "스마트 폰 활용지도사 자격증" "컴퓨터 인터넷 활용 수료증" "생애 설계와 행복 디자인 수료증" "미래 교육을 위한 구글 도구 수료증" "SNS마케팅기초" "지금은 자기경영 시대 수료증" 을 취득하였다.

"언텍트 시대에 나를 위한 시간들" 이란 수료에 참여하여 고령화 시대의 후반생을 디자인 하면서 부지런한 꿀벌이 꿀을 채집하듯이 나만의 시간표대로 분주히 맴돌아 쳤다. 모든 준비가 끝났으니 지금까지 머물러 있던 익숙함과 편안함을 버리고 간절한 마음으로 "장애인 자립생활 센터" 에 이력서를 제출했더니 힘든 면접시험을 통과하고 장애인 활동지원사로 취직하였다.

첫 인연으로 만난 이용자는 뇌병변 중증장애 1급으로 철이 (가명) 라고 부르는 41세 되는 남자였는데 대소변 처리부터 목욕까지 전면 지원해야 했다. 처음 철이를 만났을 때 1,68cm되는 키, 35kg되는 가냘픈 체중, S자로 되어있는 깡마른 척추와 변형된 얼굴을 보며 놀라움으로 도저히 잘해나갈 자신감이 없었다. 휄체어에 끈으로 묶어 놓고 양치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충격이었고 언어 장애로 말 못하고 누워서 한쪽 식도로만 식사하고 알 수 없는 표정과 눈짓, 손짓 하는 것을 보면서 무서움으로 당장 그 자리에서 도망쳐 나오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낯선 사람과 생소한 일, 그리고 빨대로 물을 먹여주는 것부터 맨땅에 헤딩하듯이 우왕좌왕하며 긴장감과 두려움에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취직으로 한껏 부풀었던 설레임과 출발, 그 신선함과는 달리 현실은 이해할 수 없는 세계였다. 가족을 대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케어했지만 하루 내내 밥을 못 먹었다는 손짓과 목욕을 못했다고 엄마에게 표현할 때는 실망과 배신감으로 세상 못 할 일이라고 펑펑 눈물을 쏟으며 카메라를 설치해서 확인해달라고 억울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사직할 생각으로 고민했지만 지능장애여서 때로는 억울하게 표현하고 또 간절한 눈빛으로 "선생님 최고" 라며 각각 다르게 표현하는 철이를 이해하고 사명감 없이 할 수 없는 직업을 선택했으니 직업인의 프로 정신과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그에게 꼭 필요한 사람으로 되겠다고 다시 마음을 먹었다.

폭염 주의보가 이어지던 어느 날 철이는 휄체어를 수리해 달라고 했다. 두 손잡이가 고장나서 삐걱거렸고 두 바퀴는 공기가 없어 납작했는데 지금 이용하는 휄체어를 이용하고 수리는 삼복더위가 지난 후에 하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거절할 수 없어 수리부로 향했다. 찜통 더위에 땀을 비 오듯이 흘리며 좌로 위로 회전하는 바퀴로 이리저리 부딪치면서 1시간 만에 수리부에 도착했더니 이렇게 망가진 휄체어를 어떻게 밀고 왔는가고 수리부 주인은 놀란 얼굴로 혀를 끌끌 차는 것 이었다.

휄체어를 밀고 돌아오는 길에는 예보에도 없던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졌는데 휄체어 때문에 버스와 택시를 이용하지 못하고 온몸으로 소낙비를 맞으며 집에 도착했다.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옷을 입은 나를 보자 철이는 빙그레 웃으면서 엄지척을 내밀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힘들었던 피로가 방금 지나간 소낙비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휄체어에 부딪쳐 이곳저곳 멍든 다리와 뻐근하게 아픈 어깨로 휴식하고 싶었지만 가족을 만나러 가는 시간이 다가와서 휴식할 수도 없었다. 대소변으로 젖어있는 기저귀를 바꾸고 외출복을 입혀야 하는데 철이가 옷 입기를 거부하고 양말 신기도 거부했다. 약속시간은 다가오는데 조급함으로 서랍의 양말을 모두 꺼내 테블 위에 놓고 한 컬레씩 보여주었지만 수십 개의 양말을 보면서 자기 양말이 없다고 고집하는 철이를 보며 답답함으로 어린애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울고 싶었다. 이렇게 양말을 신겨주는 작은 일에 한 시간을 보내고 한끼 식사도 한 시간을 이용해서 대접하고 물은 빨대로 한 모금씩 마시는 것을 기다리면서 울지도 웃지도 못할 돌발상황에 부딛치는 것이 일상으로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질긴 인내력으로 웃음 짓는 자신이 때로는 대견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대변 처리가 힘들어서 쩔쩔 매며 실수를 연발하던 왕초보 지원사가 인제는 그의 표현을 이해하는 척척 박사로 되고 넉살 좋은 수다쟁이가 되어 소통하면서 사이 좋은 짝꿍으로 되었다. 올림픽 대회 편싱 경기를 보면서 선수들처럼 빨간색 빨대와 파란색 빨대를 들고 서로 경쟁하고 먹방하는 방송을 보며 라면 한 그릇을 한 번에 먹어보는 흉내도 내면서 우리만의 특별한 시간을 보낸다. 길가의 들꽃을 꺽어 철이의 침대곁에 놓아주고 첫눈 풍경을 함께 즐기고 휴가받았던 남편의 생일날에도 철이 가족에서 긴급지원을 요구하니 급급히 뛰어가 케어하고 그의 눈높이에 맟추어 어린애처럼 춤추고 책을 읽어주며 진심을 전달하니 나의 일상도 풍요롭고 다채로워졌다.

꽂꽂이 수업에서 철이와 함께 만든 꽃이 크리스마스 행사에서 7만원에 판매될 때는 철이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워준 것같아 아들을 보는 엄마의 마음으로 기쁜 시간을 보냈다. 장애인 센터에서 주체한 "가을 풍경담기 행사" 에는 단풍이 물든 나무아래에서 웃고 있는 철이의 모습을 찍어 "낙엽과 코스모스" 라는 주제로 사진전에 출품했는데 입선작으로 선정받아 상을 받고, 받은 상품을 철이에게 줄 때 철이가 내미는 엄지척을 보며 따뜻한 진정을 느꼈다. 연말에 "최우수 지원사" 로 선정되어 상금을 주며 표창 받을때 그동안의 노력이 보상을 받은듯 하고 " 미래를 준비하는 슬기로운 생활" 이란 글로 지역 신문에 사진과 함께 소개되고 유튜브로 알려질 때는 온 세상을 다 가진듯이 활동지원사로 취직하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 었다.

장기적인 코로나로 모든 사람들이 힘든 시간을 보낼 때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 철이와 잡은 인연의 끈이 끈끈하게 이어져서 신비롭고 다행스럽기도 하다. 코로나로 직장을 잃었지만 또 새로운 직장에서 백신접종도 최우선으로 받는 혜택도 누렸으니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최고의 보상을 받은 것 같다. 코로나를 걸림돌이라고 하지만 디딤돌로 삼고 한 박자 쉬어가는 쉼표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여 여러 자격증을 취득하고 많은 것을 얻었으니 활동지원사 홍보대사처럼 일자리를 잃고 집에서 쉬고있는 지인들에게 정보를 공유하며 새 출발하라고 격려 전화를 보낸다.

예순이라는 현수막을 걸고 코로나 시대를 살아보니 지극히 당연한 일상에도 봉급을 받는 기쁨, 코로나 시대에 일할 수 있다는 긍지감과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마음에서 새삼스럽게 감사함을 느끼고 인생길 걸어가는 여행길에 철이라는 동행을 만났으니 얄미운 코로나가 어느 정도 고맙기도 하다. 뚱뚱한 몸매처럼 마음도 살찌고 넉넉한 사람으로 친절한 "감정 노동자" 로 잘 웃는 지원사 선생님으로 기억되고 싶다.

오늘의 도전과 노력이 먼 훗날 자랑스럽게 회고할 수 있도록 부스터를 달고 새로운 출발점에서 신들메를 동이고 걸어가야 되겠다. 정성이 지극하면 돌 위에도 꽃이 핀다고 언젠가는 기적이 나타나 철이의 손을 잡고 중국 여행에 함께 가며 웃고 즐길 수 있는 작은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오늘도 특별한 세계에서 특별한 하루를 시작한다.


심사평

응모글 제48편 심사평「예순, 새로운 출발점에서」 
심사위원 김학송 국가1급작가, 연변 시인협회 부회장, 연변 시랑송협회 고문


고송숙씨의 응모글 “예순, 새로운 출발점에서”는 중증장애자를 돌보며 새로운 인생을 열어가는 작자의 인생태도가 잘 드러난 작품이다.

“코로나 직격탄을 맞고” 멈춰버린 직장생활, 그리고 도전적인 자세로 인생2막을 열어가는 작자의 열기는 자못 뜨겁기만 하다. 

“장애인활동지원사”로 취직한 후 첫 인연으로 만난 뇌병변 중증장애자 철이, “인생의 여행길”에서 알게 된 철이라는 동행자를 무척 감사해 하는 작자의 너그러운 인품과 풍요로운 삶의 자세가 무척 존경스럽다.

처음 철이를 만날을 때에는 여간 당혹스럽고 어려운게 아니였다.

대소변도 받아내야 하는 철이, 낯선 사람과 새로운 일이 주는 힘겨움은 상상 이상이였다. 작자는 이 모든 어려움과 두려움을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눌러버리고 그 어떤 돌발상황도 인내심으로 극복하면서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였기에 “최우수지원사”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고 그 사적이 신문에까지 실리게 된다. 이 대목에 이르면 독자들은 작자의 빼어난 인간성과 헌신 정신에 마음속으로부터 박수 갈채를 보내게 된다. 그 바쁜 와중에도 철이를 찍은 사진으로 상까지 탓으니 나이를 거스르는 그녀의 랑만과 문화적인 면모는 독자를 매료시키기에 모자람이 없다.

어디 그뿐인가?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 공부를 열심히 하여“보양보호사자격증” 등 무려 8가지 자격증과 수료증을 획득한 그녀의 끈기와 진취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고령화시대의 후반생을 디자인”하며 새로운 인생을 열어가면서 코로나의 걸림돌마저 디딤돌로 삼는 마음의 여유, 철이와의 만남을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으로 여기고 철이와의 인연이 신비롭고 다행스럽다고 하는 작자의 언행에서 우리는 인간정신의 숭고한 높이를 보게 된다.

각박한 세상이지만 누구나 고송숙씨처럼 옳바른 생각으로 행복을 빚어낼줄 아는 그런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철이의 손을 잡고 중국 여행에 함께 가며 웃고 즐길 수 있는 작은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오늘도 특별한 세계에서 특별한 하루를 시작한다.”는 글의 마무리도 주제를 함축적으로 강조하고 있어 좋다.


심사위원 소개


황유복 프로필


•1966년, 중앙민족학원 력사학부 민족사 전공졸업.
•1966년 7월부터 중앙민족학원에서 조교로 봉직.
•1987년 9월~1988년 12월, 미국 하버드대학 교환교수.
•1984년부터, 미국, 일본, 캐내다, 소련, 몽골, 한국, 오스트레일리아 등 20여 개 대 학에서의 강의 경력.
•1972년, 중앙민족대학 조선어문학과 창설
•1993년, 중앙민족대학 한국문화연구소 창설
중앙민족대학 민족학과사회학학원 박사생지도교수 •(2013년 은퇴)
•1989년 3월-2013년6월,(北京市民办教育法人)북경조선어학교 창설(1993 후속으로 심양, 단동, 길림, 장춘, 하얼빈, 목단강, 후허호트, 석가장, 위해, 해구 등 10개 도시에 분교 설립. 무료로 한국어교육실시.
•현재, 중앙민족대학 한국문화연구소 소장. 일본 아시아경제문화연구소 최고학술고문, 중국조선민족사학회 명예회장, 중국조선사연구회 명예회장, 연변조선족자치주 사회경제발전고문, “China Daily(中国日报)” 동북아국제관계평론가(特约专家),  중국텔레비전예술가협회 중일한PD포럼자문위원,  《중국민족》사 고문 등.


김학송 프로필


•1952년 길림성 도문시 출생.
•장춘 야금지질학교 지질학과 거쳐, 연변대학 조선어문학부 졸업.

•선후로 도문시 문화국창작실 주임, 연변문학
월간사 주임편집, 연변가무단 문학창작원 등을 지냄.
•국가1급작가.
•현재 연변 시인협회 부회장, 연변 시랑송협회 고문.
•1980년 문단에 데뷔.
•해내외에서 시, 가사, 동시, 수필 등 여러 쟝르의 문학저서 30여권 상재.
•전국소수민족문학창작 “준마상”, 단군문학상, 해외동포문학상 등 수상 경력 다수.


이동렬 프로필


•1988 연변대학교 통신학부 조선어문전업 졸업 
•1983년~1992년 9월 길림성 서란시 조선족중학교(고등학부) 고급교사
 •1992년9월~2006년 길림성 용정시 교육TV 총편집
•2006년 1월~ 2012년 5월 한국 동북아신문 편집국장
•2012년 5월~ 현재  한국 동북아신문 사장/대표 
•2018년 10월~ 현재 중국신문(中国新闻 한글판) 차이나워크 잡지 편집주간 
•현재 <도서출판 바닷바람> 발행인, 한국 <동포문학> 발행인, 재한조선족작가협회장(연변작가협회 재한조선족문학창작위원회 주임). 재한동포문인협회 초대회장/현대표. 중국작가협회 회원, 사)한국문인협회 남북위원회 위원. 
•장편소설집 : 《고요한 도시》, 《낙화유수》 출간. 
•중단편소설집 : 《눈꽃서정》, 《토양대》 출간.
•수상 : 연변조선족자치주 진달래문예상, 연변작가협회 문학상, 천지문학상, 도라지문학상, 해란강문학상, 흑룡강신문 (장편)신춘문예상, 재외동포문학상 등 10여 차.
외, 한중문화교류대전, 한중일문학세미나 등 조직하고 한중문화교류대상, 동포문학상, 서울국제작가상 등 시상. 


서옥란 프로필


•1997년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연변대학교 특별초빙교수, 신문방송학과 교수, 박사지도교수.
•주요 연구영역: 미디어와 사회, 대중문화, 국제커뮤니케이션
•선후하여 서울대학교 언론정보연구소 중국국가교육부 파견 연구교수, City University of Hong Kong, Center for Communication Research 중국대륙우수청년방문학자, 한국고등교육재단 IESF방문학자 등을 지냈다. 중국 국가급 성급 등 다수 프로젝트를 완성했고 “미디어와 권력의 게임:박근혜탄핵안보도로부터 본 한국미디어생태환경의 현황”, “한국미디어의 싸드 보도 프레임연구”등 30여편의 논문을 국내외 학술지 발표했으며, 《매체와 대중문화》, 《중국조선족 대중전파와 문화발전》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제1회 연변문학 윤동주문학상 신인상(평론부분)수상, 《신문기자》잡지“올해의 10대 우수논문상”등을 수상. 


전은주 프로필


•도문 량수 출생, 2005년 연변대학 조문학부 입학, 
•2012년 동대학원 문학석사학휘 취득, 2019년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 박사학위 취득. 2020년부터 연세대학교 글쓰기 강사로 재직 중.
•2008년 한국 계간 『창작21』 로 등단하여 다수의 시와 칼럼, 문학평론을 발표. 2012년 『시향만리』 신인상, 2020년 『동포문학』 시부문 최우수상, 2021년 혜산박두진 문학상 제1회 『아시아시선상 수상』.
•연변작가협회 평론분과 회원, 한국문인협회 시분과 회원. 2019년부터 재한조선족작가협회 부회장, 재한동포문학연구회 부회장으로 활동. 2022년부터 재한동포시치료연구회 대표로 시치료 프로그램을 운영.
•논문으로 「재한조선족 디아스포라들의 ‘집 찾기’」 (2017),「재한조선족 디아스포라 정체성의 위기와 자아성찰」 (2017),「한중수교 이후 재한조선족 디아스포라 시문학에 나타난 정체성 연구」(2018),「조선족의 ‘역사적 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시론」(2019),「2000년대 이후 재한조선족 소설 연구 (2020),「중국 망명객 신규식의 디아스포라 시문학 연구」(2021),「재한조선족 문학의 ‘대림동’ 재현양상」(2021),「재한조선족 시문학의 형성과 인식의 변모연구」(2022) 등이 있다.


랑독과 음악편집 담당 소개


윤련순 프로필


•원 연변TV방송국주임아나운서, 방송지도, 연변작가협회회원
•전국방송사회작품평의에서 <매주경제> 국가 1등상(2008,12)
•제6기 전국조선말방송우수작품평의 1등상 (2001년,10) 등 국가와 성 주 우수작품 평의에서 수십차 수상
•《TV방송에서 아나운서의 언어와 MC언어의 특징 (중국조선어문 2016.6), 《 아나운서의 시각에서 본 TV뉴스문의 특성 및 리해 》(중국조선어문2017.1),《 잔디의 고집》(연변문학 2016.9),《소통의 장을 열어가는 열쇠》(청년생활2014.12)등 론문,수필 20여편 발표


장련 프로필


•2005. 9-2007.3 연변주라지오방송국 아나운서《가요데이트》진행
•2007.4-2019.8 훈춘라지오TV방송국 아나운서《훈춘뉴스》진행
•2020.3-   북경정음우리말학교 한국어강사


변소화 프로필


•주식회사 카와 STUDIO AKIRA 대표
•동북사범대학 음악학과 본과졸업
•2009년 주식회사 카와 설립
•일본에서 사진작가로 활약
•재일조선족운동회 회가 <함께해요 미래를> 작곡

기업 협찬 배너

2022년 세계 조선족 글짓기 대회 
후원과 협찬 리스트


후원 단체 리스트

1. 사단법인 전일본중국조선족련합회
2. 사단법인 일본조선족경영자협회

협찬 기업 리스트

1. 주식회사 A-YO상사(Caraz): 전심혁사장
2. 전일화부동산협회: 金山張虎회장
3. 글로벌일통 주식회사: 권호군사장
4. 주식회사 에무에이: 마홍철사장
5. 주식회사 아시안익스프레스: 리룡식사장
6. 주식회사 G&T: 박춘화사장 
7. 주식회사 플램핫: 리승희사장
8. 쉼터물산: 김정남사장
9. 주식회사 베스트엔터프라이즈: 리성호사장
10. 삼구물산 주식회사: 리성사장
11. 시루바포또 유한회사: 서성일사장
12. 주식회사 JCBC: 엄문철사장   
13. 마즈도향양양(松戸香羊羊): 권룡산사장  
14. 주식회사 타겐고시스템연구소: 김만철사장
15. 주식회사 위츠테크놀로지: 전호남사장
16. 주식회사 HANAWA: 리성룡사장
17. 주식회사 아후로시: 上田一雄사장
18. 동화(東和)솔루션엔지니어링구주식회사: 최장록사장
19. 주식회사 PLZ: 박금화사장
20. 스튜디오 아키라: 변소화사장 
21. 카바야한방연구소: 로홍매소장
22. 주식회사 ZORUHARA: 이태권사장

개인 협찬 리스트

1.최우림:중국농업대학 박사 전일본중국조선족연합회 부회장
2.장경호:신일본미술협회 심사위원 연변대학일본학우회 회장
3.김광림:일본니가다산업대학교 교수 일본도쿄대학 박사
4.리대원:재일장백산골프우호회 회장
5.박춘익:주식회사 BTU사장
6.리 숙:주식회사 미사끼(実咲)사장
7.최운학:일본훈춘동향회 회장
8.구세국:재일조선족배구협회 회장
9.박진우:金子自動車 본부장 南越谷점장
10.김정순:재일조선족심목회

일본조선족문화교류협회 계좌안내:
銀行名:三菱UFJ銀行 日暮里支店(普) 0554611
名義:一般社団法人 日本朝鮮族経済文化交流協会
【ニホンチヨウセンゾクケイザイブンカコウリユウキヨウカイ】

후원과 협찬에 관한 문의는 
일본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 메일주소로 보내주세요.
메일주소:info@jkce.org

후원금과 협찬금은 입금을 확인한 후
【一般社団法人 日本朝鮮族経済文化交流協会】명의로
령수증을 발급해드립니다.


【청소년 우수상】모국방문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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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사토우 시오리                                                       
                                         
오늘은 구름 한점없이 맑은 가을날이다. 

아침부터 두근거리는 마음을 누르면서 할머니, 어머니와 함께 셋이서 세계조선족글짓기대회에 참석하려고 길을 떠났다. 태어나서 처음 이렇게 큰 활동에 참가하게 되어 흥분과 긴장한 마음으로 들떠 있다. 이러저러한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조선족 문화회관 역에 도착하였다. 문화협회 선생님들이 역에서 우리를 열정적으로 안내해주셔서 감사히 잘 도착하게 되였다. 

시상식 프랑카드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고, 걸려진 그림과 장식품들은 연길에 갔을 때 자주 보았던 정겨운 모습이였다. 

여기저기에서 조선어로 주고 받는 사람들로 가득하여 여기가 일본이라는 것을 까먹게 하였다.

세 시부터 시상식이여서 주위를 둘러보니 어린 학생은 나뿐이였다. 사회자분께서 입상한 제목과 성함을 부르기 시작하였다. 조금 시간이 흐른 뒤 청소년부문의 발표가 시작되였다.

갑자기 저의 이름이 호명되어 너무 놀랐다. 미숙한 저한테도 이런 영광이 찾아올 것은 꿈에도 생각조차 못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추스리며 수상대에 올라가니 사회자께서 수상소감을 물으니 너무나도 긴장하여 아무말도 떠오르지를 않았다. 그리하여 미숙한 저를 잘 부탁드린다고 간단히 인사를 남기고 상장을 받아 황급히 좌석에 돌아왔다. 지금도 그때 생각만 하면 심장이 쿵쾅댄다. 

시상식이 끝나고서는 회식시간을 가졌다. 

후원자들이 손수 만든 다양한 음식을 보니까 군침을 꼴깍 삼키게 하였다. 코로나 이후에 중국을 한번도 못가게 되어 맛나는 요리를 보게 되니 두번째 고향인 연길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들끓어 올랐다. 

언제 즈음이면 전처럼 자유롭게 연길에 갈수 있을까..

연길엔 못가도 이렇게 일본에서 상다리 부러지게 차린 고향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큰 행복이었다. 

오늘 행사에 참가하고 많은 것을 느꼈다.  

민족 문화는 그 어느 개개인보다는 다 같이 협력하고 노력해야 대대손손 이어나갈 수 있다는 것을 깊이 느꼈다. 비록 앞길은 멀고도 멀지만 이 같은 활동이 있음으로 타향에서도 자기들의 언어와 글 그리고 문화를 빛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비록 일본에서 태어나서 자랐지만 어머니의 민족 문화를 더욱 배워 중국과 조선 그리고 일본문화 차이에 대한 연구를 하고 싶다.

【응모글 제41편】모국여행 방문기

글:사토우 시오리 랑독:장련 음악편집:변소화

오래전부터 재외동포재단에서 개최하는 청소년 모국방문활동에 참가하려고 했었는데, 코로나 영향으로 3년만에 겨우 개최하게 되었고, 저는 운이 좋게 심사에 통과하게 되어서 이번 모국방문단에 참가하였습니다.

출국날인 7월27일 첫 학기 마지막 기말시험 날이기도 하였습니다. 아침부터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무사히 시험을 마치고 공항을 향하여 출발하였습니다.

저의 16살 인생에서 처음으로 혼자서 이국 타향에 떠나는 마음은 흥분과 긴장 그리고 말 못할 복잡한 마음이었습니다. 언어의 장벽 그리고 한국에 가서 만날 친구들을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인천 공항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공항에서 반갑게 맞아 주시는 캠프 책임자들과 세계 각국에서 온 학생들과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이튿날 우리들은 연세대학교 캠퍼스에서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평창청소년수련관으로 출발하였습니다. 평창에서 모국방문 개막식을 하고 웰컴파티에 참가하였습니다. 한국 국내에서 참가한 중고생들이 우리들을 너무 반갑게 맞아주어서 내가 진짜 한국에 왔다는 것을 실감하였습니다.

한국역사문화 체험의 날에는 통일전망대에 갔었는데 한국의 역사에 대해서도 많은 학습이 되었습니다. 저는 재외동포 4세로서 증조할아버지가 27살에 한국을 떠나게 되어서 나한테도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걸 알았었지만 이렇게 직접 통일전망대에 와보니 더 역사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만약 전쟁이 없었더라면 나도 이 땅에서 살았으리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하였습니다.

여러가지 이벤트가 많았었지만 저에게 가장 즐거웠던 날은 8월1일이었습니다. 아침 일찍 버스로 이동하여 평창 땀띠공원에 도착했습니다.공원에서 쓰레기 줍기 행사가 있었는데 친구들과 쓰레기를 주으면서 나의 자그마한 노력으로 환경이 더욱 더 깨끗해 질 수가 있다는 것을 심심히 느끼게 되었습니다.그리고 며칠동안 한국대학생 리더들한테서 배운“Korea”라는 춤을 관객들한테 보여주고, 마지막엔 물풍선을 던지고 물을 맞으면서 음악에 맞춰서 자유롭게 춤을 추기도 하였습니다. 오후에는 학생들끼리 참여한 동아리에서 지금까지 연습한 것을 보여주고 감상하였습니다. 활동은 주로 고전무용, 음악, 아트, 힙합댄스, 극으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저는 힙합댄스 클럽에 참가했었습니다. 저희들은 음악팀과 합동으로“This is me”라는 곡으로 참가자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저녁엔 한국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삼겹살 파티를 하고 그랜드에 모여서 모닥불을 피우고 모닥불을 둘러싸고 신나게 춤을 추었습니다. 다음 날이면 친구들과 이별을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도 서운하여서 선생님들과 친구들이랑 밤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만남은 항상 행복하지만 이별은 항상 너무 어려운 것 같습니다. 

페막식을 마치고 친구들과 헤어지려고 하니까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헤어지면서 내년에도 여름방학에 한국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을 하면서 서서히 움직이는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심사평

응모글 제41편 심사평「모국방문 여행기」 
심사위원 서옥란 연변대학교 특별초빙교수, 신문방송학과 교수, 박사지도교수


어린 16세 중학생의 아주 평범해보이는 수학여행기 이지만 짧은 글속에는 모국에 대한 깊은 사랑과 따뜻한 인간애에 대한 기특하고도 순수한 마음이 잔잔히 느껴진다.  

저자는 아마 아주 어렸을때부터 모국에 대한 그리움으로 차 있었던 것 같다. “오래전부터 한국재외동포재단에서 개최하는 청소년 모국 방문활동에 참가하려고 했는데” 라고 모국에 대한 동경으로 서두를 뗐다. 글의 제목 자체부터 한국방문이 아닌 “모국방문 여행기”라고 달고 있다. 모국에 대한 깊은 사랑, 몸은 타지에 있지만 마음은 항상 모국에 가 있다는 것이 문장 전체에 녹아들어 있다.

평창에서 모국방문 개막식과 웰컴파티에서 한국 중고생들이 너무 반겨 맞아주고 또한 그들의 뜨거운 열정에서 감동을 받았고 따뜻한 정을 느꼈다. 재외동포 4세로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걸 알고있지만 직접 통일전망대에 와보니 한국역사에 대하여 더 관심을 가졌다고 쓰면서 인류에게 재앙을 가져다주는 전쟁에 대해 비판하고 평화와 인간애, 그리고 사랑의 소중함을 호소하고 있다. 

평창 땀띠공원에서 친구들과 쓰레기를 주으면서 나의 자그마한 노력으로 환경이 더욱 깨끗해 질수가 있다는 것을 몸소 겪으며, 그것도 다름아닌 고국에서이니 감회가 더 깊었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저탄소, 친환경을 중시하고 있는 현재에 환경보호에 앞장서고 있는 이 자그마한 행동이 기특하다. “K-POP”, “K-드라마”, “K-음식”, “K-문화” 등 한류의  K문화가 전세계의 관심과 총애를 받고 있는데 모국에서 몸소 그것을 배우고 실천하고 느끼는 동안 K문화에 대한 사랑을 넘어서 모국문화가 자랑스러웠을 것이다. 

어린 재외동포 4세의 모국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느낄 수가 있어서 읽는 내내 감동되였다.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글의 처음에 언급했듯이 모국에서 겪는 언어장벽이라든가 문화적 이질감 등 부분도 살짝 넣었더라면 글이 더욱 재미있고 내용이 풍부해졌을것이라 생각한다. 


심사위원 소개


황유복 프로필


•1966년, 중앙민족학원 력사학부 민족사 전공졸업.
•1966년 7월부터 중앙민족학원에서 조교로 봉직.
•1987년 9월~1988년 12월, 미국 하버드대학 교환교수.
•1984년부터, 미국, 일본, 캐내다, 소련, 몽골, 한국, 오스트레일리아 등 20여 개 대 학에서의 강의 경력.
•1972년, 중앙민족대학 조선어문학과 창설
•1993년, 중앙민족대학 한국문화연구소 창설
중앙민족대학 민족학과사회학학원 박사생지도교수 •(2013년 은퇴)
•1989년 3월-2013년6월,(北京市民办教育法人)북경조선어학교 창설(1993 후속으로 심양, 단동, 길림, 장춘, 하얼빈, 목단강, 후허호트, 석가장, 위해, 해구 등 10개 도시에 분교 설립. 무료로 한국어교육실시.
•현재, 중앙민족대학 한국문화연구소 소장. 일본 아시아경제문화연구소 최고학술고문, 중국조선민족사학회 명예회장, 중국조선사연구회 명예회장, 연변조선족자치주 사회경제발전고문, “China Daily(中国日报)” 동북아국제관계평론가(特约专家),  중국텔레비전예술가협회 중일한PD포럼자문위원,  《중국민족》사 고문 등.


김학송 프로필


•1952년 길림성 도문시 출생.
•장춘 야금지질학교 지질학과 거쳐, 연변대학 조선어문학부 졸업.

•선후로 도문시 문화국창작실 주임, 연변문학
월간사 주임편집, 연변가무단 문학창작원 등을 지냄.
•국가1급작가.
•현재 연변 시인협회 부회장, 연변 시랑송협회 고문.
•1980년 문단에 데뷔.
•해내외에서 시, 가사, 동시, 수필 등 여러 쟝르의 문학저서 30여권 상재.
•전국소수민족문학창작 “준마상”, 단군문학상, 해외동포문학상 등 수상 경력 다수.


이동렬 프로필


•1988 연변대학교 통신학부 조선어문전업 졸업 
•1983년~1992년 9월 길림성 서란시 조선족중학교(고등학부) 고급교사
 •1992년9월~2006년 길림성 용정시 교육TV 총편집
•2006년 1월~ 2012년 5월 한국 동북아신문 편집국장
•2012년 5월~ 현재  한국 동북아신문 사장/대표 
•2018년 10월~ 현재 중국신문(中国新闻 한글판) 차이나워크 잡지 편집주간 
•현재 <도서출판 바닷바람> 발행인, 한국 <동포문학> 발행인, 재한조선족작가협회장(연변작가협회 재한조선족문학창작위원회 주임). 재한동포문인협회 초대회장/현대표. 중국작가협회 회원, 사)한국문인협회 남북위원회 위원. 
•장편소설집 : 《고요한 도시》, 《낙화유수》 출간. 
•중단편소설집 : 《눈꽃서정》, 《토양대》 출간.
•수상 : 연변조선족자치주 진달래문예상, 연변작가협회 문학상, 천지문학상, 도라지문학상, 해란강문학상, 흑룡강신문 (장편)신춘문예상, 재외동포문학상 등 10여 차.
외, 한중문화교류대전, 한중일문학세미나 등 조직하고 한중문화교류대상, 동포문학상, 서울국제작가상 등 시상. 


서옥란 프로필


•1997년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연변대학교 특별초빙교수, 신문방송학과 교수, 박사지도교수.
•주요 연구영역: 미디어와 사회, 대중문화, 국제커뮤니케이션
•선후하여 서울대학교 언론정보연구소 중국국가교육부 파견 연구교수, City University of Hong Kong, Center for Communication Research 중국대륙우수청년방문학자, 한국고등교육재단 IESF방문학자 등을 지냈다. 중국 국가급 성급 등 다수 프로젝트를 완성했고 “미디어와 권력의 게임:박근혜탄핵안보도로부터 본 한국미디어생태환경의 현황”, “한국미디어의 싸드 보도 프레임연구”등 30여편의 논문을 국내외 학술지 발표했으며, 《매체와 대중문화》, 《중국조선족 대중전파와 문화발전》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제1회 연변문학 윤동주문학상 신인상(평론부분)수상, 《신문기자》잡지“올해의 10대 우수논문상”등을 수상. 


전은주 프로필


•도문 량수 출생, 2005년 연변대학 조문학부 입학, 
•2012년 동대학원 문학석사학휘 취득, 2019년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 박사학위 취득. 2020년부터 연세대학교 글쓰기 강사로 재직 중.
•2008년 한국 계간 『창작21』 로 등단하여 다수의 시와 칼럼, 문학평론을 발표. 2012년 『시향만리』 신인상, 2020년 『동포문학』 시부문 최우수상, 2021년 혜산박두진 문학상 제1회 『아시아시선상 수상』.
•연변작가협회 평론분과 회원, 한국문인협회 시분과 회원. 2019년부터 재한조선족작가협회 부회장, 재한동포문학연구회 부회장으로 활동. 2022년부터 재한동포시치료연구회 대표로 시치료 프로그램을 운영.
•논문으로 「재한조선족 디아스포라들의 ‘집 찾기’」 (2017),「재한조선족 디아스포라 정체성의 위기와 자아성찰」 (2017),「한중수교 이후 재한조선족 디아스포라 시문학에 나타난 정체성 연구」(2018),「조선족의 ‘역사적 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시론」(2019),「2000년대 이후 재한조선족 소설 연구 (2020),「중국 망명객 신규식의 디아스포라 시문학 연구」(2021),「재한조선족 문학의 ‘대림동’ 재현양상」(2021),「재한조선족 시문학의 형성과 인식의 변모연구」(2022) 등이 있다.


랑독과 음악편집 담당 소개


윤련순 프로필


•원 연변TV방송국주임아나운서, 방송지도, 연변작가협회회원
•전국방송사회작품평의에서 <매주경제> 국가 1등상(2008,12)
•제6기 전국조선말방송우수작품평의 1등상 (2001년,10) 등 국가와 성 주 우수작품 평의에서 수십차 수상
•《TV방송에서 아나운서의 언어와 MC언어의 특징 (중국조선어문 2016.6), 《 아나운서의 시각에서 본 TV뉴스문의 특성 및 리해 》(중국조선어문2017.1),《 잔디의 고집》(연변문학 2016.9),《소통의 장을 열어가는 열쇠》(청년생활2014.12)등 론문,수필 20여편 발표


장련 프로필


•2005. 9-2007.3 연변주라지오방송국 아나운서《가요데이트》진행
•2007.4-2019.8 훈춘라지오TV방송국 아나운서《훈춘뉴스》진행
•2020.3-   북경정음우리말학교 한국어강사


변소화 프로필


•주식회사 카와 STUDIO AKIRA 대표
•동북사범대학 음악학과 본과졸업
•2009년 주식회사 카와 설립
•일본에서 사진작가로 활약
•재일조선족운동회 회가 <함께해요 미래를> 작곡

기업 협찬 배너

2022년 세계 조선족 글짓기 대회 
후원과 협찬 리스트


후원 단체 리스트

1. 사단법인 전일본중국조선족련합회
2. 사단법인 일본조선족경영자협회

협찬 기업 리스트

1. 주식회사 A-YO상사(Caraz): 전심혁사장
2. 전일화부동산협회: 金山張虎회장
3. 글로벌일통 주식회사: 권호군사장
4. 주식회사 에무에이: 마홍철사장
5. 주식회사 아시안익스프레스: 리룡식사장
6. 주식회사 G&T: 박춘화사장 
7. 주식회사 플램핫: 리승희사장
8. 쉼터물산: 김정남사장
9. 주식회사 베스트엔터프라이즈: 리성호사장
10. 삼구물산 주식회사: 리성사장
11. 시루바포또 유한회사: 서성일사장
12. 주식회사 JCBC: 엄문철사장   
13. 마즈도향양양(松戸香羊羊): 권룡산사장  
14. 주식회사 타겐고시스템연구소: 김만철사장
15. 주식회사 위츠테크놀로지: 전호남사장
16. 주식회사 HANAWA: 리성룡사장
17. 주식회사 아후로시: 上田一雄사장
18. 동화(東和)솔루션엔지니어링구주식회사: 최장록사장
19. 주식회사 PLZ: 박금화사장
20. 스튜디오 아키라: 변소화사장 
21. 카바야한방연구소: 로홍매소장
22. 주식회사 ZORUHARA: 이태권사장

개인 협찬 리스트

1.최우림:중국농업대학 박사 전일본중국조선족연합회 부회장
2.장경호:신일본미술협회 심사위원 연변대학일본학우회 회장
3.김광림:일본니가다산업대학교 교수 일본도쿄대학 박사
4.리대원:재일장백산골프우호회 회장
5.박춘익:주식회사 BTU사장
6.리 숙:주식회사 미사끼(実咲)사장
7.최운학:일본훈춘동향회 회장
8.구세국:재일조선족배구협회 회장
9.박진우:金子自動車 본부장 南越谷점장
10.김정순:재일조선족심목회

일본조선족문화교류협회 계좌안내:
銀行名:三菱UFJ銀行 日暮里支店(普) 0554611
名義:一般社団法人 日本朝鮮族経済文化交流協会
【ニホンチヨウセンゾクケイザイブンカコウリユウキヨウカイ】

후원과 협찬에 관한 문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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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대상】자유로운 나날들을 꿈 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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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박수영

《별 하나에 고향, 머나먼 고향》 

한껏 대학생활의 흔쾌함에 빠져들어있던 고요한 밤에 의외의 좋은 소식에 새삼스런 감동을 느끼게 됩니다. 이번 2022년 Caraz(카라즈)컵 세계조선족글짓기대회에 참여할 기회를 가지고 심지어 청소년조 대상까지 수상된 것이 한없이 영광스럽습니다. 활동을 주최해주신 여러분, 제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독자들, 그리고 항상 응원해주는 가족들한테 감사를 전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올립니다. 〈자유로운 나날들을 꿈 꾸며〉의 앞부분은 제가 대학입시시험을 앞둔 고중삼학년시절 스트레스 푸는 식으로 적어 본 글입니다. 뒤부분은 시험성적까지 나온 후 지난 십몇년간 학습에 대한 총결이기도 합니다. 글에서 쓴 것처럼 저는 기대치까진 달하지 못했지만 그나마 만족할 만한 성적을 표로 삼아 인생의 새로운 기차에로 환승하였습니다. 미지의 세계를 탐색할 수 있다는 것에 기대 가득하기도 하지만 그전의 전부 인생이 배여있는 고향의 땅에서 발을 옮기려니 출발하기도 전부터 그리움에 푹 젖어있군 하였습니다. 몇년래 가장 여유로웠던 두 달의 방학과 작별한 후 어느 더위가 아물거리는 밤에 끝내 상해에 도착하였습니다. 상해에서의 첫날 밤, 별이 안보였습니다. 적응력이 괜찮은 덕에 상상했던 불편감은 견뎌내기 쉬웠으나 가끔 저도 모르는 사이에 고향과 비교하게 됩니다. 결과는 항상 ‘다 좋다’로 끝내긴 하지만 마음속 한 구석에서는 남몰래 고향의 편을 드는 상 싶습니다. 몸은 천리밖으로 떠났으나 고향의 타령은 추억의 골짜기에서 맴돌고 맴돌고… 출발하기전, 산더미처럼 쌓인 짐을 보면서도 굳이 윤동주 시집 한 권을 트렁크 구석에 애써 밀어 넣었습니다. 고향의 한 쪼각을 떼내 챙기고 떠나겠다는 의미일지도 모릅니다. 타향에 있더라도 그 시집을 읽으면서 혈액속에 잠겨있는 우리 말의 혼을 살리려 합니다. 나이는 어려도 저도 우리 글의 락관치 못한 현황이 눈에 보입니다. 미래에 더 힘들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탄식만 내뱉게 되고. 바로 이런 상황이기때문에 이번 활동을 주최해주신 여러분이 더욱 고맙습니다. “언어는 민족의 열쇠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칠흑같은 야색에서도 우리 말이라는 횃불을 지키려, 이어가려 노력하는 여러분들 몸에서 희망의 빛이 보입니다. 저도 장래에 민족사업을 위해 무슨 큰 일을 해낼 수 있을 지는 몰라도 우리 말에 대한 사랑만은 버리지 않겠습니다. 오늘도 상해의 밤하늘에서 별을 찾아 헤여봅니다. “별 하나에 동년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고향, 머나먼 고향” (2022년 11월 12일 박수영 상해에서)

【응모글 제33편】자유로운 나날들을 꿈 꾸며

글:박수영 랑독:윤련순 음악편집:변소화

1.대학입시 전: 희망+

또 이마를 찌프린 채 요란한 알람을 끄다가 대학 입시 준비 시간을 타일러주는 날자에 정신을 차리는 하루였다. 납덩이처럼 무거운 몸을 질질 끌고 세수를 마치고는 6시간 전의 자취가 은은히 아물거리는 책상앞에 다시 앉는다. 아침 자습 영상 회의도 곧 시작될 거니까... 이런 무미건조한 일상을 반복한지 어느새 두달이나 됐다. 백날 선서 때의 열정도 시간의 흐름에 씻겨 재더미로 돌아가 부들부들 떨리는 의지로만 마지막 불씨를 지켜가고 있다. 

오늘도, 오늘도 현실의 안개에 앞길이 가리워져 허우적거린다. 

그렇다고 반가운 것이 없는 건 아니다. 요즘따라 창턱에 매달려 있기 좋아하게 됐는데 보석마냥 티없이 푸른 하늘과 바람의 꼬리를 당기며 노니는 구름에서 내가 소유했던, 내가 갈망하는 자유로움이 느껴지기 때문이다.허나 그걸 보다가도 또 갇혀있다는 생각에 코로나를 저주하군 한다. 

그러던 어느 하루, 모멘트에 올린 다른 동학들의 충실한 복습생활을 보며 사색의 여울목에 빠졌다. 내 시간을 빼앗아가고, 내 열정을 도려낸 것이 과연 코로나일가? 아니면 자률하지 못한 내 자신의 나약함일가? 아무리 생각을 굴려봐도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내가 변하지 않는 이상, 나는 내가 꿈 꾸는 자유로움을 영원히 반길 수 없을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코로나가 막지 않아도 학교에 앉아 방황할 것이고 학교를 졸업해도 망망한 앞길을 보며 무거운 탄식을 내뱉을 것이다. 내가 꿈 꾸는 자유로움은 사실 기다림과 원망이 아닌, 내 피타는 노력과 드팀없는 의지에 달려 있는 것이리라. 또 내가 꿈 꾸는 자유로운 날개도 필을 쥐면서 생긴 굳은 살이 박힌 내 손으로 그려내야 하는 것이리라. 

이런 깨달음에 스러져가고 있던 마음속의 불빛이 다시 타오르는 것 같았다. 부지기수의 선배들의 꿈을 가져라는 권고를 귀가 닳도록 들었는데 그걸 단순한 직업에, 차거운 물질재부에 련상하였기에 '꿈'이라는 단어에 담겨진 웅숭깊은 아름다움과 간단없이 타오르는 희망의 화염에 눈 주지 못했던 것이였다. 

“오늘의 청춘의 꿈은 래일의 진실의 그림자다.” 라는 말이 있다. 

오늘의 꿈이 있고 오늘의 환상이 있기에 눈앞의 역경을 이겨낼 용기를 얻게 되는 것이고 래일의 진실에 기초를 닦아놓을 수 있는 것이다. 

꿈을 품으며 나도 코로나라는 굴레를 벗을 것이고  굳센 의지로 추호의 동요없이 미래로 발걸음을 내뻗을 것이다. 이런 정열을 마음에 또박또박 새기며 다시 필을 쥐려 한다. 

오늘도, 오늘도 나는 자유로운 나날들을 꿈 꾸며 안개를 헤치고 나아간다. 

 2.대학입시 후: 희망+현실

드디어 대학입시 후 대학지망 작성까지 끝마치고 이렇게 홀가분한 몸으로 컴퓨터 앞에 나앉게 된다. 눈코 뜰 새 없었던 시험준비 기간에 끄적여낸 글을 다시 만나보게 되니 잔잔한 감동에 입꼬리가 올라가군 한다.

아쉽게도 고중생활의 시편에 끝내 유감의 마침표를 남기게 되였다. 그토록 갈망하던 일류의 대학이 쉽고 가능해 보였던 것은 어쩌면 어릴 적 밤하늘을 향해 손 뻗는 것과 류사할 지도 모른다. 손가락 틈 사이로 흘러나온 미약한 빛을 보고 별을 쥔 착각을 가지게 된 귀여운 꿈일 뿐이겠지. 

그렇다고 두려움에 의해 새로운 꿈을 가지는 것에 망설이는 건 삼가하려 한다. 실망보다 더 무서운 것은 기대가 없는 삶인 것이다. 기대속에서는 늘 용기가 잉태되는 법이다.

또 탄식과 눈물의 바다에 잠겨있을 필요도 없는 것 같다. 금방 지난 건 근근히 인생도로의 첫 굽이에 불과한 바 종점은 멀고 미래는 미지로 가득 차있으니까. 

진정한 자유로움이 아직 아득히 먼 까닭으로 오늘도 래일도 계속 전진하려 한다. 아무리 평범한 인간으로 태여나 리상주의적인 기대로만 앞날을 그려보는 우리일지라도 일상속의 아름다움을 파헤쳐 가며 꾸준히 삶의 의의를 찾아간다면 다채롭게 살아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포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심사평

응모글 제33편 심사평「자유로운 나날들을 꿈 꾸며」 
심사위원 이동렬 동북아신문 대표, 재한조선족작가협회장, ‘도서출판 바닷바람’ 발행인


“꿈”을 찾아가는 내심의 청춘 그래프를 보여줘 
-서사(敍事)의 힘을 길러야 더 좋은 글을 쓸 수가 있다  

박수영의 '자유로운 나날을 꿈 꾸며’는 대학입시 전과 입시 후로 나뉘어 글을 구성했다. 대학입시전에는 코로나19 등 현실의 벽 앞에서 “허우적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자유로운 미래”를 향해 나가라려는 결심을 보여주었다면, 대학입시후에는 "꾸준히 삶의 의의를 찾아”“자유"를 추구하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자유로운 나날”이란 곧“꾸준히 삶의 의의를 찾아나가는”삶의 여정을 지칭한다.   

이 글은 소제목을 달아 구성을 탄탄하게 해서 주제를 풀어나가고 있다. 

제목은 글의 눈이라는 말이 있다. 제목을 보면 작자가 "자유로운 나날"에 대한 "꿈"을 이야기 하련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 꿈의 핵심은 무엇일까? 물론 "자유"이다.  

그럼 입시전에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코로나로 인한 "무미건조한 일상을 반복한지 어느새 두 달","현실의 안개에 앞길이 가리워져 허우적거린다". 그래서 깨닳은 것이 "내가 변하지 않는 이상, 나는 내가 꿈꾸는 자유로움을 영원히 반길 수 없을 것이 불 보듯 뻔하다."이다. "꿈을 품으며 나도 코로나라는 굴레를 벗을 것이고 굳센 의지로 추호의 동요없이 미래로 발걸음을 내뻗을 것이다."라고 확신한다. 코로나 굴레를 벗고 미래를 향해 드팀없이 나가는“자유”를 지향한 것이다. 

그럼 "두 번째 대학입시후"는 어떠할까? 박수영은 "희망+현실"을 함께 얘기했다. 

"금방 지난 건 근근히 인생 도로의 첫 굽이에 불과한 바(현실) 종점은 멀고 미래는 미지로 가득 차있다(희망)"며, "진정한 자유로움이 아직 아득히 먼 까닭으로 오늘도 래일도 계속 전진하려 한다"고 쓰고있다. 

결말에 가서는 "일상속의 아름다움을 파헤쳐 가며 꾸준히 삶의 의의를 찾아간다면 다채롭게 살아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포옹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자유로운 나날"에 대한 "꿈"의 내용물을 규명했다. 즉 "자유"란 "꾸준히 삶의 의의를 찾아"가면서 "다채롭게 살아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 가는 것이다. 작자는 이렇게 짧은 글을 통해 미지의 앞날을 개척하려는 열정과 진취심이 넘치는 청춘의 패기를 보여주고 있다.  

이 글의 또 다른 장점은 문맥이 순통하고 세련됐으며, 절제된 언어구사와 은유 등 수법을 사용해 글을 함축성 있게 쓰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꿈에 대한 묘사에서: “'꿈'이라는 단어에 담겨진 웅숭깊은 아름다움과 간단없이 타오르는 희망의 화염에 눈 주지 못했던 것이였다.", "어쩌면 어릴 적 밤하늘을 향해 손 뻗는 것과 류사할 지도 모른다. 손가락 틈 사이로 흘러나온 미약한 빛을 보고 별을 쥔 착각을 가지게 된 귀여운 꿈일 뿐이겠지."

코로나의 영향으로 무기력한 상태에 빠졌을 때: “납덩이처럼 무거운 몸을 질질 끌고 세수를 마치고는 6시간 전의 자취가 은은히 아물거리는 책상앞에 다시 앉는다.”, “백날 선서 때의 열정도 시간의 흐름에 씻겨 재더미로 돌아가 부들부들 떨리는 의지로만 마지막 불씨를 지켜가고 있다.”

다른 동학들의 충실한 복습생활을 봤을 때: “굳센 의지로 추호의 동요없이 미래로 발걸음을 내뻗을 것이다. 이런 정열을 마음에 또박또박 새기며 다시 필을 쥐려 한다.”

대학입시 후 꿈에 대해 의론을 할 때: “실망보다 더 무서운 것은 기대가 없는 삶인 것이다. 기대속에서는 늘 용기가 잉태되는 법이다.”, “또 탄식과 눈물의 바다에 잠겨있을 필요도 없는 것 같다… 종점은 멀고 미래는 미지로 가득 차있으니까.” 

라는 묘사는, 기성 작가 못지 않은 글솜씨를 엿보게 한다.  

그럼에도, 이 글에는 약점이 있다. 서사(敍事)를 홀시한 것, 디테일한 이야기가 없다. 이야기를 풀어낼줄 모르면 절대 좋은 글을 쓸 수가 없다. 서사가 없는 글은 공허하게 되며 독자들을 감동시킬 수 없다.  

좀더 설명하면, 서사란 서술자가 어떤 사건의 전개 과정을 개연성 있게 전달하는 양식을 가리킨다. 서사의 성립 요건은 사건과 서술자이다. 서술자가 대학입시 전과 후로 나뉘어 경험하고 갈등해온 사건에 대한 전개를 통해 좀더 디테일하게 이야기를 엮어내려갔더라면 과연 어떠했을까? 

글쓰기를 계속 하려면 반드시 서사의 힘을 길러야 할 것이다. 


심사위원 소개


황유복 프로필


•1966년, 중앙민족학원 력사학부 민족사 전공졸업.
•1966년 7월부터 중앙민족학원에서 조교로 봉직.
•1987년 9월~1988년 12월, 미국 하버드대학 교환교수.
•1984년부터, 미국, 일본, 캐내다, 소련, 몽골, 한국, 오스트레일리아 등 20여 개 대 학에서의 강의 경력.
•1972년, 중앙민족대학 조선어문학과 창설
•1993년, 중앙민족대학 한국문화연구소 창설
중앙민족대학 민족학과사회학학원 박사생지도교수 •(2013년 은퇴)
•1989년 3월-2013년6월,(北京市民办教育法人)북경조선어학교 창설(1993 후속으로 심양, 단동, 길림, 장춘, 하얼빈, 목단강, 후허호트, 석가장, 위해, 해구 등 10개 도시에 분교 설립. 무료로 한국어교육실시.
•현재, 중앙민족대학 한국문화연구소 소장. 일본 아시아경제문화연구소 최고학술고문, 중국조선민족사학회 명예회장, 중국조선사연구회 명예회장, 연변조선족자치주 사회경제발전고문, “China Daily(中国日报)” 동북아국제관계평론가(特约专家),  중국텔레비전예술가협회 중일한PD포럼자문위원,  《중국민족》사 고문 등.


김학송 프로필


•1952년 길림성 도문시 출생.
•장춘 야금지질학교 지질학과 거쳐, 연변대학 조선어문학부 졸업.

•선후로 도문시 문화국창작실 주임, 연변문학
월간사 주임편집, 연변가무단 문학창작원 등을 지냄.
•국가1급작가.
•현재 연변 시인협회 부회장, 연변 시랑송협회 고문.
•1980년 문단에 데뷔.
•해내외에서 시, 가사, 동시, 수필 등 여러 쟝르의 문학저서 30여권 상재.
•전국소수민족문학창작 “준마상”, 단군문학상, 해외동포문학상 등 수상 경력 다수.


이동렬 프로필


•1988 연변대학교 통신학부 조선어문전업 졸업 
•1983년~1992년 9월 길림성 서란시 조선족중학교(고등학부) 고급교사
 •1992년9월~2006년 길림성 용정시 교육TV 총편집
•2006년 1월~ 2012년 5월 한국 동북아신문 편집국장
•2012년 5월~ 현재  한국 동북아신문 사장/대표 
•2018년 10월~ 현재 중국신문(中国新闻 한글판) 차이나워크 잡지 편집주간 
•현재 <도서출판 바닷바람> 발행인, 한국 <동포문학> 발행인, 재한조선족작가협회장(연변작가협회 재한조선족문학창작위원회 주임). 재한동포문인협회 초대회장/현대표. 중국작가협회 회원, 사)한국문인협회 남북위원회 위원. 
•장편소설집 : 《고요한 도시》, 《낙화유수》 출간. 
•중단편소설집 : 《눈꽃서정》, 《토양대》 출간.
•수상 : 연변조선족자치주 진달래문예상, 연변작가협회 문학상, 천지문학상, 도라지문학상, 해란강문학상, 흑룡강신문 (장편)신춘문예상, 재외동포문학상 등 10여 차.
외, 한중문화교류대전, 한중일문학세미나 등 조직하고 한중문화교류대상, 동포문학상, 서울국제작가상 등 시상. 


서옥란 프로필


•1997년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연변대학교 특별초빙교수, 신문방송학과 교수, 박사지도교수.
•주요 연구영역: 미디어와 사회, 대중문화, 국제커뮤니케이션
•선후하여 서울대학교 언론정보연구소 중국국가교육부 파견 연구교수, City University of Hong Kong, Center for Communication Research 중국대륙우수청년방문학자, 한국고등교육재단 IESF방문학자 등을 지냈다. 중국 국가급 성급 등 다수 프로젝트를 완성했고 “미디어와 권력의 게임:박근혜탄핵안보도로부터 본 한국미디어생태환경의 현황”, “한국미디어의 싸드 보도 프레임연구”등 30여편의 논문을 국내외 학술지 발표했으며, 《매체와 대중문화》, 《중국조선족 대중전파와 문화발전》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제1회 연변문학 윤동주문학상 신인상(평론부분)수상, 《신문기자》잡지“올해의 10대 우수논문상”등을 수상. 


전은주 프로필


•도문 량수 출생, 2005년 연변대학 조문학부 입학, 
•2012년 동대학원 문학석사학휘 취득, 2019년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 박사학위 취득. 2020년부터 연세대학교 글쓰기 강사로 재직 중.
•2008년 한국 계간 『창작21』 로 등단하여 다수의 시와 칼럼, 문학평론을 발표. 2012년 『시향만리』 신인상, 2020년 『동포문학』 시부문 최우수상, 2021년 혜산박두진 문학상 제1회 『아시아시선상 수상』.
•연변작가협회 평론분과 회원, 한국문인협회 시분과 회원. 2019년부터 재한조선족작가협회 부회장, 재한동포문학연구회 부회장으로 활동. 2022년부터 재한동포시치료연구회 대표로 시치료 프로그램을 운영.
•논문으로 「재한조선족 디아스포라들의 ‘집 찾기’」 (2017),「재한조선족 디아스포라 정체성의 위기와 자아성찰」 (2017),「한중수교 이후 재한조선족 디아스포라 시문학에 나타난 정체성 연구」(2018),「조선족의 ‘역사적 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시론」(2019),「2000년대 이후 재한조선족 소설 연구 (2020),「중국 망명객 신규식의 디아스포라 시문학 연구」(2021),「재한조선족 문학의 ‘대림동’ 재현양상」(2021),「재한조선족 시문학의 형성과 인식의 변모연구」(2022) 등이 있다.


랑독과 음악편집 담당 소개


윤련순 프로필


•원 연변TV방송국주임아나운서, 방송지도, 연변작가협회회원
•전국방송사회작품평의에서 <매주경제> 국가 1등상(2008,12)
•제6기 전국조선말방송우수작품평의 1등상 (2001년,10) 등 국가와 성 주 우수작품 평의에서 수십차 수상
•《TV방송에서 아나운서의 언어와 MC언어의 특징 (중국조선어문 2016.6), 《 아나운서의 시각에서 본 TV뉴스문의 특성 및 리해 》(중국조선어문2017.1),《 잔디의 고집》(연변문학 2016.9),《소통의 장을 열어가는 열쇠》(청년생활2014.12)등 론문,수필 20여편 발표


장련 프로필


•2005. 9-2007.3 연변주라지오방송국 아나운서《가요데이트》진행
•2007.4-2019.8 훈춘라지오TV방송국 아나운서《훈춘뉴스》진행
•2020.3-   북경정음우리말학교 한국어강사


변소화 프로필


•주식회사 카와 STUDIO AKIRA 대표
•동북사범대학 음악학과 본과졸업
•2009년 주식회사 카와 설립
•일본에서 사진작가로 활약
•재일조선족운동회 회가 <함께해요 미래를> 작곡

기업 협찬 배너

2022년 세계 조선족 글짓기 대회 
후원과 협찬 리스트


후원 단체 리스트

1. 사단법인 전일본중국조선족련합회
2. 사단법인 일본조선족경영자협회

협찬 기업 리스트

1. 주식회사 A-YO상사(Caraz): 전심혁사장
2. 전일화부동산협회: 金山張虎회장
3. 글로벌일통 주식회사: 권호군사장
4. 주식회사 에무에이: 마홍철사장
5. 주식회사 아시안익스프레스: 리룡식사장
6. 주식회사 G&T: 박춘화사장 
7. 주식회사 플램핫: 리승희사장
8. 쉼터물산: 김정남사장
9. 주식회사 베스트엔터프라이즈: 리성호사장
10. 삼구물산 주식회사: 리성사장
11. 시루바포또 유한회사: 서성일사장
12. 주식회사 JCBC: 엄문철사장   
13. 마즈도향양양(松戸香羊羊): 권룡산사장  
14. 주식회사 타겐고시스템연구소: 김만철사장
15. 주식회사 위츠테크놀로지: 전호남사장
16. 주식회사 HANAWA: 리성룡사장
17. 주식회사 아후로시: 上田一雄사장
18. 동화(東和)솔루션엔지니어링구주식회사: 최장록사장
19. 주식회사 PLZ: 박금화사장
20. 스튜디오 아키라: 변소화사장 
21. 카바야한방연구소: 로홍매소장
22. 주식회사 ZORUHARA: 이태권사장

개인 협찬 리스트

1.최우림:중국농업대학 박사 전일본중국조선족연합회 부회장
2.장경호:신일본미술협회 심사위원 연변대학일본학우회 회장
3.김광림:일본니가다산업대학교 교수 일본도쿄대학 박사
4.리대원:재일장백산골프우호회 회장
5.박춘익:주식회사 BTU사장
6.리 숙:주식회사 미사끼(実咲)사장
7.최운학:일본훈춘동향회 회장
8.구세국:재일조선족배구협회 회장
9.박진우:金子自動車 본부장 南越谷점장
10.김정순:재일조선족심목회

일본조선족문화교류협회 계좌안내:
銀行名:三菱UFJ銀行 日暮里支店(普) 0554611
名義:一般社団法人 日本朝鮮族経済文化交流協会
【ニホンチヨウセンゾクケイザイブンカコウリユウキヨウカ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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